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백자 달항아리와 오수환의 서체 추상화. 가나아트센터 제공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백자 달항아리와 오수환의 서체 추상화. 가나아트센터 제공
둥글고 펑퍼짐한 형태가 무엇이든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완벽한 형태에 관심이 없다는 듯 한쪽이 살짝 이지러지기도 했다. 맑고 깊은 유백색의 표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조선백자 달항아리 얘기다.

한국의 미를 논할 때마다 첫손에 꼽히는 조선백자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되새기고 그 미감을 오늘에 되살린 작품을 함께 음미해보는 ‘백자대호, 빛을 그리다: 김환기, 오수환’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달항아리’로 불리는 순백의 백자대호(白磁大壺) 7점, 조선백자 청화백자 등 자기류 50점, 김환기·오수환의 유화와 과슈(불투명 물감으로 그린 수채화) 등 모두 87점이 출품돼 한국미의 짙은 향기를 전해준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높이 40㎝가 넘는 7점의 달항아리. 이 중 3점은 보물로 지정된 명품 중의 명품이다. 달항아리는 18세기 조선백자의 백미로,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달라지는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녔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생전에 “폭넓은 흰 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不定形)의 원(圓)이 그려주는 무심스러운 아름다움”을 백자 항아리의 매력으로 꼽았고 김환기도 “내 예술의 모든 것은 백자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했을 정도로 그 미감은 현대 미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환기는 서구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에서 활동했지만 서구 예술 전통에 함몰되지 않고 서구 양식과 재료를 한국적 미감 속에 녹여냈다. 이번에 출품된 20여점의 작품은 대부분 1960년대에 제작된 것들로,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해 표현했다. 부정형의 곡선으로 가득한 그 자연스러움은 달항아리와 한 쌍을 이룬다.

서체 추상화로 잘 알려진 오수환 화백(67)은 화려한 색상의 유화물감으로 역동적인 필획을 휘둘러 감성 풍부한 동양화의 선 맛을 만들어낸다. 풍부한 여백 위에 표현된 부정형의 선들은 조선백자의 둥근 형태처럼 천연덕스럽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달항아리들이 단순히 김환기와 오수환의 현대미술 명품과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백자의 오지랖, 이것이 한국미의 본질이다. 내달 17일까지. (02)720-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