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이민정책도 일본 전철 밟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위성도시에 가봤더니 전체 집의 4분의 1은 비어 있더라고요.”
최근 현지에 다녀온 한 경제연구소 박사의 말이다. 도쿄 북서부의 사이타마현은 경기도와 비슷한 곳이다. 철도 등 교통이 편리해 1960년대부터 주택이 빽빽이 들어섰다. 6만석 규모의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선 2002년 월드컵이 열렸고, 김연아가 연기를 펼쳤던 사이타마 슈퍼아레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을 덮친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이들 위성도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수많은 단카이 세대(1947~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단카이 주니어들은 결혼을 늦게하거나 하지 않고, 출퇴근이 편리한 도쿄 도심에 산다. 게다가 50~60년된 헌 집이다 보니 이사 오려는 사람이 자취를 감췄다. 돈 안 쓰는 노인만 가득해지자, 상점은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 상가가 철시하니 물건을 하나 사려고 해도 수십㎞씩 가야 하는 쇼핑난민이 생기고, 이러니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집은 방치되다시피 한다.
사이타마와 실리콘밸리 차이
이렇게 빈집이 일본 전체에 756만호(2008년 국토교통성 조사)나 된다. 전국 주택의 13.1%다. 그러니 집값은 오르기 어렵고, 소비 진작도 불가능하다. “슈퍼 고령화가 일본을 죽이고 있다”는 게 그 박사의 결론이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지난해 돌아봤던 미국 실리콘밸리가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에도 낡은 주택이 많다. 하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다. 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착하다’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평균 집값이 105만달러다. 최근 이곳에서 살아온 70~80대 백인 노인 중엔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수많은 정보기술(IT) 업체 직원들과 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 특히 본국에서 돈을 싸들고 오는 중국인에게 집을 비싸게 팔고 플로리다 등으로 떠난다는 것.
사이타마와 실리콘밸리의 차이는 어디서 생겼을까. 기업가정신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이민정책이다. 이민자를 성장을 위한 엔진으로 보고 적극 받아들인 미국, 그리고 전혀 그렇지 않은 일본.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최소 1억명의 인구를 지키기 위해 매년 20만명씩 이민을 받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차가운 여론 탓에 접었다.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일본보다 급속히 진행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민정책도 나을 게 없다. 외국인 전문기술인력 정책은 유명무실해 5만명에 달하는 전문·기술 사증 소지자 대다수가 외국어 강사다. 그들을 빼면 제대로된 전문 인력은 극소수다. 기업과 대학이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론 외국인에겐 문을 열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교육 의료 등 고급 외국인 인력의 이주를 뒷받침할 만한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은 거의 20년 차이로 일본을 쫓아왔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2030년에 가면 2010년의 일본 꼴이 날 것이다. 2010년은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가 일본에서 처음 빈집 방치를 막는 조례를 만든 해다.
한국은 빈집 방지법을 만들게 될까, 아니면 이민법을 고칠까. 안타깝지만 전자일 듯하다. 제 핏줄인 중국 동포와 탈북자조차 비하하고, 제주에 중국 돈이 몰리자 “떼놈에게 팔아넘긴다”며 비판하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
최근 현지에 다녀온 한 경제연구소 박사의 말이다. 도쿄 북서부의 사이타마현은 경기도와 비슷한 곳이다. 철도 등 교통이 편리해 1960년대부터 주택이 빽빽이 들어섰다. 6만석 규모의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선 2002년 월드컵이 열렸고, 김연아가 연기를 펼쳤던 사이타마 슈퍼아레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을 덮친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이들 위성도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수많은 단카이 세대(1947~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단카이 주니어들은 결혼을 늦게하거나 하지 않고, 출퇴근이 편리한 도쿄 도심에 산다. 게다가 50~60년된 헌 집이다 보니 이사 오려는 사람이 자취를 감췄다. 돈 안 쓰는 노인만 가득해지자, 상점은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 상가가 철시하니 물건을 하나 사려고 해도 수십㎞씩 가야 하는 쇼핑난민이 생기고, 이러니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집은 방치되다시피 한다.
사이타마와 실리콘밸리 차이
이렇게 빈집이 일본 전체에 756만호(2008년 국토교통성 조사)나 된다. 전국 주택의 13.1%다. 그러니 집값은 오르기 어렵고, 소비 진작도 불가능하다. “슈퍼 고령화가 일본을 죽이고 있다”는 게 그 박사의 결론이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지난해 돌아봤던 미국 실리콘밸리가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에도 낡은 주택이 많다. 하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다. 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착하다’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평균 집값이 105만달러다. 최근 이곳에서 살아온 70~80대 백인 노인 중엔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수많은 정보기술(IT) 업체 직원들과 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 특히 본국에서 돈을 싸들고 오는 중국인에게 집을 비싸게 팔고 플로리다 등으로 떠난다는 것.
사이타마와 실리콘밸리의 차이는 어디서 생겼을까. 기업가정신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이민정책이다. 이민자를 성장을 위한 엔진으로 보고 적극 받아들인 미국, 그리고 전혀 그렇지 않은 일본.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최소 1억명의 인구를 지키기 위해 매년 20만명씩 이민을 받겠다는 구상을 내놨지만, 차가운 여론 탓에 접었다.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일본보다 급속히 진행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민정책도 나을 게 없다. 외국인 전문기술인력 정책은 유명무실해 5만명에 달하는 전문·기술 사증 소지자 대다수가 외국어 강사다. 그들을 빼면 제대로된 전문 인력은 극소수다. 기업과 대학이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론 외국인에겐 문을 열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교육 의료 등 고급 외국인 인력의 이주를 뒷받침할 만한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은 거의 20년 차이로 일본을 쫓아왔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2030년에 가면 2010년의 일본 꼴이 날 것이다. 2010년은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가 일본에서 처음 빈집 방치를 막는 조례를 만든 해다.
한국은 빈집 방지법을 만들게 될까, 아니면 이민법을 고칠까. 안타깝지만 전자일 듯하다. 제 핏줄인 중국 동포와 탈북자조차 비하하고, 제주에 중국 돈이 몰리자 “떼놈에게 팔아넘긴다”며 비판하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