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견리사의(見利思義)
편도 4차선 도로의 1차선에서 밤길 운전을 하고 있었다. 길옆으로 교통경찰관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끼익’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금속성 소리에 놀라 앞을 보니 경찰관이 3차선을 달리던 차량 바로 앞에서 몸을 활처럼 휘며 가까스로 피하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2차선에서 법규를 위반한 차량이 발견되자 그 운전자를 잡기 위해 뛰어들었던 것이다.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는데 무작정 도로로 뛰어들 생각을 했을까. 더욱이 교통안전이라면 누구보다 나은 교통 경찰관이 아닌가. 순간 아찔한 생각이 스쳤다.

처음에는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반 차량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도로를 쳐다보고 있다가 마침 위반 차량이 나타나자 다른 것은 일절 보이지 않고 그 차량만 보였을 게 틀림없다. 생각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 차량에 붙어 있던 탓에 자신의 판단력은 없어지고 감각만 남은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삐걱대던 배의 뒤편에서 아낙네가 어린아이를 잡고 오줌을 누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걸이가 툭 떨어져버렸다. 아낙네는 순간적으로 목걸이를 잡느라 애를 놓아버렸다고 한다. 생각이란 이처럼 아찔한 찰나의 순간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곤 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나에게 있어야지 다른 데 가서 붙어 있으면 안 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부쩍 늘고 있는 금융사기도 순간적으로 생각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그 사람에게 붙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생각이 나를 떠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숱하게 많다.

공자의 견리사의(見利思義)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드러난 뜻은 눈앞에 이익이 있을 때 이것을 취하는 것이 합당한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속뜻은 내 생각이 눈앞의 이익에 붙어 있지 말고 나에게 머물러서 올바른 판단을 하라는 뜻일 터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럴 때 생각이 나에게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마음 수양이 깊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수양이 깊지 못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독한 마음을 먹고 수양을 하든지, 아니면 밖에 나가버린 생각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경록 <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grkim@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