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맡으면 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우직하게 해내는 것이 김영민 특허청장의 장점이다. 과장 시절 장관과 중동 출장을 나갈 때는 한 달 이상 잠을 못자며 행사를 준비하다 현지에서 쓰러진 일도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흐트러짐이 없다. 반듯하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내놓는 공통된 평가다. 조곤조곤한 말투에 과장한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대화할 때는 상대 쪽으로 상체를 조금 기울여 들으며 친근감을 보여준다.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밴 느낌이다. 그렇다고 물렁물렁한 스타일은 아니다. 작년에는 특허청 수장을 맡자마자 30년 이상 큰 변화가 없던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반발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6개월가량 대화를 이어가며 직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부드러운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붙은 이유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지식재산권(IP) 정책을 총괄하는 김영민 특허청장(56)을 서울 역삼동 남도음식점 ‘해남 천일관’에서 만났다. 해외 특허청장 등 외국 손님을 대접할 때 찾는 이곳은 전라도식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맛집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향은 경북 상주시 함창읍이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는 제사상에 오른 마른 문어나 어쩌다 동태를 맛보는 게 생선의 전부였다”며 “경상도보다는 먹거리가 다양한 전라도가 음식 맛은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인재 많은 경북 상주 출신

해남 천일관은 고(故) 박성순 여사가 1924년 전남 땅끝 해남읍에 식당을 연 것을 시작으로 90년째 이어오고 있는 맛집이다. 저녁 차림상을 주문하자 잡채와 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요리가 차려졌다. 반주로는 김 청장이 즐겨 마시는 막걸리를 택했다. 안주에는 숯불 삼겹살과 찹쌀 김밥이 제격이었다. 숯불에 구워낸 삼겹살과 찹쌀밥만으로 말아놓은 김밥이 묘한 합을 이뤘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민 특허청장 "愼獨의 힘…묵묵히 맡은 일 해내니 앞길이 열리더군요"
김 청장은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82년 3월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부임한 국세청을 시작으로 상공부, 특허청 등 32년간 공직 외길을 걸었다. 2011년 4월에는 특허청 차장으로 발탁됐고 지난해 3월부터는 23대 특허청장을 맡고 있다.

특허 디자인 브랜드 등 첨단 지식재산을 총괄하고 있지만 김 청장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다. 상주는 함창·이안들이 넓게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논에 나가 피를 뽑으면 키가 작아 턱에 벼 잎이 걸려 힘이 들었다”며 “학교를 마친 후에는 소를 끌고 나가 들에 풀어놓고 친구들과 항복할 때까지 씨름을 하는 고상박기를 했다”고 말했다.

상주시는 인구가 10만명밖에 되지 않지만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재경 상주인 모임인 상산회 멤버의 면면도 화려하다. 김 청장을 비롯해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 등이 상주 출신이다.

김 청장은 함창중·고등학교를 나와 경북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는 과학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는 이공계 진학을 시도했다. 구미에 금오공업고등학교가 설립돼 학비 전액 지원, 군 하사관 근무 등의 혜택을 주며 인재를 모았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김 청장도 1회 신입생 모집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너무 시골이라서…”라며 그를 위로했다.

공무원을 택한 것은 대학 3학년 때로 그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최종 합격한 것은 대학원에 진학한 1981년이다.

32년 한길을 가다

이야기가 무르익기 시작하자 삼합, 낙지탕탕이 등 상에 차려진 요리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곳이 전통의 맛집이라는 것은 풍성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김치와 젓갈 맛에서 알 수 있었다. 겨울에 땅에 1년 정도 묻었다 내놓는 묵은 김치는 맛의 깊이부터 달랐다. 동태젓, 갈치 속젓, 자하젓 등 평소 맛보기 힘든 젓갈들은 여름에 떨어진 입맛까지 살려주는 느낌이다.

김 청장이 행시를 통과하고 처음 부임한 곳은 북부산세무서였다. 나이 많은 아랫사람들과 일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산더미처럼 쌓인 세무 서류를 모두 챙겨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직원들이 그냥 결재 도장만 달라고 할 때가 많았는데 잘못되면 어쩌나 겁도 났다”고 소개했다. 결국 1년도 채 근무하지 못하고 상공부에 자원해 옮겨갔다.

김 청장은 상공부 시절 기억에 남는 일로 1988년 사무관 때 만든 중소기업구조조정 특별법을 꼽았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이 중소기업국장을 하던 시절 법안 조문을 만드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당시 중소기업들의 업종이 바뀔 때였는데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이 필요했다”며 “다른 나라에서 참조할 법이 없어 밤을 새우며 1조부터 법안을 직접 만든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장 오래 담당한 것은 통상이다. 당시 통상은 고단한 업무에 비해 보여줄 성과를 내기 어려워 모두가 기피하는 분야였다. 미주통상과, 세계무역기구담당관실, 무역투자실 구아협력과장에 이어 산업자원부로 바뀐 후 벨기에 1등 서기관까지 수년간 통상 업무를 맡았다. 노른자위 일을 쫓아 다니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김 청장이 통상에 오래 붙들려 있었던 이유다. 그는 “1990년대 초반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설 때 미국은 301조 조항을 이용해 보복하려 했다”며 “미국과의 양자 협상이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의 다자 협상 틀을 만들고 원가 계산이 어려운 조선업의 특성을 알리고 설득해 반덤핑관세 부과를 막아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 청장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주요 학맥으로 떠오른 위스콘신대 출신이기도 하다. 1998년 위스콘신메디슨대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성실, 배려가 공직 성공 비결

정부대전청사 특허청장실에서는 최근 1년 넘게 큰소리가 사라졌다. 대화를 강조하는 김 청장의 리더십 덕분에 회의 중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싫은 소리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특허청의 한 직원은 “이 정도면 큰소리가 나올 법한 순간인데도 청장은 차분하게 대화를 풀어간다”며 “직원들 사이에선 앞으로 10년간 이런 청장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부드러운 리더십은 김 청장이 화려하지 않은 경력에도 공직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며 승진한 배경으로 꼽힌다.

일을 맡으면 잠을 자지 않고서라도 우직하게 해내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과장 시절 장관과 함께 중동 출장을 나갈 때는 한 달 이상 잠을 못자며 행사를 준비하다 현지에서 쓰러진 일도 있다. 조선 협상을 맡았을 때는 1년간 파리에 14번이나 출장을 갔고, 30~4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매번 손으로 고쳐 쓰며 담당 국장으로부터 신임을 얻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신독(愼獨)’이다.

김 청장은 “공직 생활에 성공한 배경을 자주 묻는데 딱히 비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좀 재미없는 얘기지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성실함이 최고의 방법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공직 생활은 직업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과 국가의 발전을 고민하고 작으나마 성과를 냈을 때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 특허 만드는 특허청

식사를 하기 직전 나오는 떡갈비는 해남 천일관을 대표하는 메뉴다. 갈빗살을 직접 다져 뭉친 뒤 숯불에 구워 내놓는다. 살코기를 씹는 식감이 일품이다. 식사로 나오는 된장국은 담백하다.

김 청장이 특허청을 맡은 뒤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강한 특허’다. 지금까지 특허 심사관은 특허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를 찾아 거절하는 게 주업무였다. 하지만 더 강한 특허를 만들 수 있도록 신청자가 적정한 권리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주는 쪽으로 심사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36년 만에 특허청 조직을 개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 전자 기계 화학 등 기술별로 구분하던 조직을 달라진 융합 산업 분류에 맞춰 바꿨다.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지식재산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연내 특허 심사 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하고 특허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적절한 기술을 연결해주는 ‘지식재산(IP) 중개소’도 설치할 계획이다.

그는 “창조경제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하는데 국민 누구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특허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발명 진흥이 창의교육이고 창조경제의 밑거름”이라며 “젊은 학생들이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 보고 도전할 수 있도록 전국의 발명교실, 발명센터 등의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주요국 특허 정보, 공개 합의 주도

김영민 특허청장은 지난 6월 부산에서 미국, 일본, 중국, 유럽 특허청과 함께 선진 5개국(IP5) 특허청장 회담을 열었다. 2008년에 이어 6년 만에 주요국 청장 회담을 국내에서 개최한 것. 김 청장은 이번 회의에서 심사관만 공유하던 특허심사 진행, 특허 문헌 정보 등 각종 특허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2016년까지 5개국이 모두 특허 정보를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민 특허청장 "愼獨의 힘…묵묵히 맡은 일 해내니 앞길이 열리더군요"
김영민 청장의 단골집 해남 천일관 숯불香 은은한 떡갈비·입에 착 감기는 찹쌀 김밥 '묘한 궁합'

해남 천일관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객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은 식당이다. 고 박성순 여사가 식당을 처음 연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간 전통의 맛을 이어오고 있다.

전남 해남읍의 식당은 며느리가 물려받은 뒤 이름을 천일식당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해남 천일관은 박 여사의 막내딸인 김정심 씨가 1990년 열었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눈썰미부터 음식을 만드는 정성까지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배운 손맛을 살려 전통의 맛을 재현하고 있다.

해남 천일관은 제땅, 제철에 나는 재료만을 고집한다. 대갱이 참게장 세발낙지 대구찌개 떡갈비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표 음식인 떡갈비는 100% 갈빗살을 일일이 직접 다진 후 인공 첨가물 없이 뭉쳐 숯불에 구워 내놓는다. 숯불에 구운 삼겹살과 남도 김에 찹쌀밥을 싸서 만든 김밥도 별미다.

점심에는 숯불구이 한상, 굴비 한상, 떡갈비 한상을 주문할 수 있으며 가격은 3만5000원이다. 저녁 차림상은 세트 메뉴다. 은솔(8만원), 달솔(10만원)로 나뉜다.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36-13. (02)568-7775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영민 특허청장 "愼獨의 힘…묵묵히 맡은 일 해내니 앞길이 열리더군요"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