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관계형 금융 가이드라인’에 대해 은행들이 지나친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관계형 금융이란 은행이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거래, 접촉, 관찰, 현장방문 등을 통해 얻은 연성정보를 토대로 대출은 물론 지분 투자, 재무·회계 등 컨설팅까지 지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금감원이 올초 국내 저축은행에 도입했던 것인데, 대통령이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은행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

은행들의 대출 관행을 개선하자는 취지야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관계형 금융의 대상(9~11등급의 제조·IT 중소기업), 지원방식(대출, 지분투자), 기간(3년 이상) 등이 사실상 관치요 정부의 강제요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라는 점이다. 9~11등급(전체 15등급)이면 실제로 부도 직전인 경우가 많아 은행들은 대출과 동시에 충당금부터 쌓아야 한다. 은행들이 이미 기술형 금융에 투자하고 저신용 중소기업 대출상품도 있는데, 또 지원책부터 만드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 본연의 기능은 축적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중개하는 것이지, 배급하듯 뿌리는 것이 아니다. 자본 효율성 추구가 곧 경제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금융은 비 올 때 우산을 뺏을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비 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비 그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다. 이것이 금융경쟁력의 관건이다. 수익성 제고를 고민하는 은행이라면 안 그래도 유망 중기 발굴에 혈안이다. 금융당국이 획일적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시시콜콜한 간섭이 금융권 보신주의의 본질이다.

더구나 금융사들의 선택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감독당국이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금융에마저 소위 싸구려 민주화를 단행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