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교보생명 창립자 大山 신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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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매사에 따뜻한, 땀내 나는 잔정을 베풀어라. 그럼 (상대방이) 오래 있게 된다.”
교보생명 창립자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이 영업대책회의에서 종종 했던 말이다. 대산 선생은 1917년 8월11일 전남 영암에서 6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어려서부터 일제 탄압을 받았다. 20세 때 만주 다롄으로 넘어가 이육사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옮겨 미곡장사를 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댔고 일제 추적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1946년 5월 귀국해 해방 후 혼란을 지켜보며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임을 절실히 느꼈다. 1958년 8월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를 창립했다. 치밀한 연구 끝에 세계에서 처음 내놓은 교육보험 상품은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또 국내 첫 건강보험인 암보험 개발,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책임준비금 최초 적립 등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평생의 일념이던 ‘책을 통한 교육문화 공간 마련’을 위해 1981년 교보문고를 설립했다. 농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991년 대산농촌문화재단을 세워 농업기술 발전을 지원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문학재단인 대산문화재단도 세웠다.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고 세계보험 명예의전당에 헌정되며 국내외로부터 ‘보험의 큰 스승’으로 불렸다. 2003년 9월 86세로 타계했다.
■ 大山 신용호
1917년 8월 전남 영암 출생
1958년 8월 교보생명 창립
1981년 교보문고 설립
1991년 대산농촌문화재단 설립
1992년 대산문화재단 설립
2003년 9월 타계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교보생명 창립자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이 영업대책회의에서 종종 했던 말이다. 대산 선생은 1917년 8월11일 전남 영암에서 6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어려서부터 일제 탄압을 받았다. 20세 때 만주 다롄으로 넘어가 이육사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했다. 이후 베이징으로 옮겨 미곡장사를 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댔고 일제 추적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1946년 5월 귀국해 해방 후 혼란을 지켜보며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임을 절실히 느꼈다. 1958년 8월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주식회사를 창립했다. 치밀한 연구 끝에 세계에서 처음 내놓은 교육보험 상품은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또 국내 첫 건강보험인 암보험 개발,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책임준비금 최초 적립 등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평생의 일념이던 ‘책을 통한 교육문화 공간 마련’을 위해 1981년 교보문고를 설립했다. 농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991년 대산농촌문화재단을 세워 농업기술 발전을 지원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문학재단인 대산문화재단도 세웠다.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고 세계보험 명예의전당에 헌정되며 국내외로부터 ‘보험의 큰 스승’으로 불렸다. 2003년 9월 86세로 타계했다.
■ 大山 신용호
1917년 8월 전남 영암 출생
1958년 8월 교보생명 창립
1981년 교보문고 설립
1991년 대산농촌문화재단 설립
1992년 대산문화재단 설립
2003년 9월 타계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