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1인 4역 '행복한 오 기사', 작가 겸 건축가 오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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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그림도 건축을 향한 여정…'인생의 지도' 그립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영어·생물 싫어 택한 건축학과…여행 통해 건축디자인 꿈 키워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 중
삶의 방식이 도시를 결정한다
비슷한 듯 다른 서울과 도쿄
건물과 도로 사이 빈 공간…서울엔 배려의 느낌 아쉬워
배우 엄지원 씨와 화촉
"여행이 선사한 많은 영감, 청년들도 경험하게 해주자"
아내가 아이디어 냈지요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영어·생물 싫어 택한 건축학과…여행 통해 건축디자인 꿈 키워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 중
삶의 방식이 도시를 결정한다
비슷한 듯 다른 서울과 도쿄
건물과 도로 사이 빈 공간…서울엔 배려의 느낌 아쉬워
배우 엄지원 씨와 화촉
"여행이 선사한 많은 영감, 청년들도 경험하게 해주자"
아내가 아이디어 냈지요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https://img.hankyung.com/photo/201408/AA.8955831.1.jpg)
“서울연구원으로부터 ‘2030년 서울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라는 주제의 이미지 작업을 의뢰받고 북한산부터 관악산까지 서울의 남북 도시축을 그린 거예요. 흔히 미래에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모든 것을 컴퓨터가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100년 뒤에도 광화문이랑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대로 있을 거예요.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빌딩도 문화재처럼 있을 거고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소중한 것과 미래의 것을 함께 그린 상상도예요.”
오 건축가는 오영욱이라는 본명보다는 ‘오 기사’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기사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기사를 의미한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등 5권의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행복한 오기사’라는 이름의 블로그에 올리는 그림도 인기가 많다. 그는 “여행도 그림도 결국은 모두 건축을 향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형 건설사 그만두고 10년 건축여행을 떠나다
고교 3학년이던 1994년 12월. 운 좋게도 수학능력시험을 기대 이상으로 잘 봤다. 그때는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특차제도가 있었다. 특차생을 뽑는 모든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가 나왔다.
열아홉 살의 그는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영어와 생물을 안 좋아해 의대는 가기 싫었다. 대신 건축 도시 등과 같은 말들이 끌렸다. 만화책을 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때 방영한 KBS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배우 이병헌 씨가 건축학과 대학생으로 나왔어요. 굉장히 멋있었죠.”
그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95학번으로 입학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과도 맞아떨어진다. “제 사랑 이야기와도 비슷해요.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첫사랑….” 그는 지난 5월 배우 엄지원 씨와 결혼했다. ‘새신랑이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당황한 듯 웃었다. “어쨌든 주인공보다 영화에서 (여자친구를 뺏는) 악역으로 나오는 안경 선배 역할에 더 공감하면서 봤어요. 보통 남학생들은 1학년 때 상처받고, 2학년 때 나쁘게 굴잖아요.”
대학 4학년 때 건축기사 자격증을 딴 뒤 건설회사에 입사해 3년간 근무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체했다. 1999년 대림산업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기업 일이 자신과 잘 맞았다고 했다. 대체 근무기간을 채우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고민에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닌데 그 당시엔 서른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배낭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회사 윗분들은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느냐’고 말렸지만 궁극적으로 건축 디자인을 하고 싶었기에 미련은 없었어요.” 그렇게 떠난 여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시 모습은 건축물 아닌 시민이 결정”
오 건축가에게 가장 좋았던 도시 순서는 오래 머물렀던 순서와 같다. 그는 가장 오래 산 서울을 1순위로 꼽고 이어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페루 쿠스코를 꼽았다.
번외로 꼽은 곳이 일본 도쿄다. 상당수 국내 도시의 근대적인 구조는 일제강점기때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도쿄에 가면 감동도 받고 자극도 받아요.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는데, 더 잘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항상 들죠.”
그는 서울과 도쿄에서 가장 크게 차이나는 부분이 건물과 도로 사이라고 했다. 일본은 깨끗한데 한국은 쓰레기가 있거나 경계석이 깨져 있는 등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인식하느냐 여부에 따른 차이라는 설명이다. “도시의 모습은 건물 형태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결정돼요. 우리는 질곡의 역사 끝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적지 않게 잃은 것 같아요. 그게 도시 내 건물과 도로 사이 경계에서 보이는 거죠. 일본을 따라가자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오 건축가는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신진 건축가를 발굴하고 건축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공공건축물 품질을 높이기 위해 2012년부터 서울시가 시작한 제도다. 올초에는 서울광장에 만들어진 스케이트장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디자인비를 따로 산정하지 않아 다른 비슷한 프로젝트에 비해 2000만~3000만원 정도 부족분이 생겼다”며 “디자인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지만 예산 반영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설계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실행 단계에서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상당 부분 시공사들이 공사하기 쉬운 건축물이 우리 도시를 채웠다고 봅니다. 이제 조금만 신경쓰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공공건축가로) 참여한 거예요.”
그는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한강을 꼽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수도를 가봐도 한강만큼 거대한 빈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도심에서는 짧은 시야가 한강에 나가면 길어지는 경험도 특별하단다.
○일러스트레이터 등 1인 4역…중심은 건축
![[人사이드 人터뷰] 1인 4역 '행복한 오 기사', 작가 겸 건축가 오영욱](https://img.hankyung.com/photo/201408/AA.8955875.1.jpg)
마지막은 여행이다. 올겨울에 2주일 동안 18~25세 사이의 청년 3~4명을 모아 호주로 떠날 계획이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어려운 학생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5월 신혼여행으로 한 달간 스페인과 모로코를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부인인 엄씨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
“여행이 제게 준 게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어려운 친구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랑의 가장 좋은 표현 방식은 자기가 아까운 걸 주는 거잖아요. 한 번 다녀오는 데 예산이 2000만원 정도 들더라고요. 제가 같이 가서 챙기되, 토론하거나 회의를 할 때는 1인분의 역할만 할 거예요.”
건축가, 여행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방송인까지. 여러 가지 역할 속에 그가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모든 것을 시작한 계기는 건축입니다. 여행을 가서 도시와 건축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 모두 건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건축은 정말 돈이 안 돼요. 지금도 그림 그려서 사무실이 손해보는 걸 메우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바로 건축입니다.”
■ 건축가의 세계
건축학과 5년이면 ‘PT 달인’…광고계도 선호
영화 ‘건축학개론’ 엄태웅, 드라마 ‘신사의 품격’ 장동건, ‘내일은 사랑’ 이병헌, ‘결혼 못하는 남자’ 지진희…. 이들 모두는 건축(공학)과 대학생이나 건축가 역할로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다. 보통 건축가는 방송이나 영화에서 낭만적으로 그려져 많은 이들이 ‘환상’을 품는 직종이다.
정확한 명칭은 건축사다. 국토교통부가 시행하는 ‘건축사 자격시험’을 치른 뒤 면허증을 받는다.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5년간 설계 사무실이나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면 응시자격이 생긴다. 4년제를 졸업하면 ‘건축사 예비시험’을 쳐서 합격한 뒤 실무경력 5년을 쌓아야 한다. 합격률은 10% 안팎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건축기사 자격시험’은 건축사에 비해 합격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자격증을 따면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가 가능해 오 건축가처럼 건축학과에 다니는 4학년 남학생들이 많이 딴다.
건축학과 졸업생의 ‘정도(正道)’는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희림 같은 대형사부터 오기사디자인처럼 아틀리에 사무실까지 다양하다. 건설회사에 들어가 설계 업무를 할 수도 있다.
초봉은 천차만별이다. 설계사무소의 경우 연 2000만원 초중반대, 대형 건설사는 연 4000만원대다.
광고회사에서도 건축학과 졸업생을 선호한다. 독특한 디자인과 이미지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부분이 같아서다. 또 설계도면을 설명해야 하는 건축학과 수업 특성도 가점 요인이다. 오 건축가도 “학과 수업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너희가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프레젠테이션의 최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