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국과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등 위기 경험국 문제가 잇달아 터지고 있다. 때맞춰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를 계기로 신흥국에서는 각종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급격한 자금이탈’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급격한 자금이탈은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고,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 침체는 또 다른 자금 이탈을 유발하는 이른바 나선형 악순환 위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위기 경험국 사례를 보면 급격한 자금이탈은 대다수 국가에서 외환위기, 금융위기 또는 국가채무위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급격한 자금이탈은 특정 국가의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에는 내부 요인보다 외부 요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기실현적 기대’로 설명하는 시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될 경우 자본 흐름이 역전되면서 급격한 자금이탈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인접 국가로 전염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신흥국 금융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이 이론에 따라 파악하려는 경향이 높아지는 추세다. 아르헨티나도 이 점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외자 이탈을 경험한 국가에서 나타난 공통된 특징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 특징은 위기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급격한 외자이탈이 발생한 국가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특징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CDS 프리미엄과 해외자본 유출입, 환율과의 관계를 보면 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두 배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외자 유입이 감소한다. 변동성이 더 심해져 장기평균치에서 네 배 벗어나면 CDS 프리미엄이 이전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같은 시점에서 외자순유입 규모도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두 배 이상 감소하는 이른바 ‘급격한 이탈 단계’에 진입한다. 이때부터 위기 발생국의 통화 가치는 절하되기 시작한다. 그만큼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당시 절상되다가 해외자본 유입이 갑자기 중단된 이후 곧바로 대량 이탈로 급진전되는 과정에서 통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기별로는 ‘급격한 외자이탈’ 발생국 통화가치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세 배를 벗어나거나 해당연도 절하율이 직전연도 절하율을 10%포인트 웃돌 경우 이전보다 빨라지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외환위기로 치닫는다. 이때 위기 발생국에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인식되면 CDS 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는 진정 국면에 들어간다.

하지만 위기 발생국의 외화유동성에 의심이 갈 경우 투기성 자본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국제통화기금의 유동성 지원 같은 계기가 마련되기까지 혼란 국면이 지속된다. 이 단계에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통화표시 자금 조달이 곤란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이탈이 발생하면 외환에 대한 초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심각한 외화 부족에 직면한다.

그 후 주가와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투자자의 디레버리지(부채 축소·저축 제고), 통화가치 절하에 따른 대차대조표 효과 등을 통해 비교적 큰 폭의 실물경기 침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우 실물경기 침체가 또 다른 외자 이탈을 유발하는 ‘나선형 악순환’ 위기에 빠지는 국가도 있다.

이런 과정을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국에 적용해 보면 이번에는 국가별로 커다란 차이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리인상 등을 계기로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 가장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high crisis countries)는 외환보유액도 적고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심한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지금 당장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전염될 소지가 있는 국가(middle crisis countries)로는 외환보유액은 적정 이상 쌓아뒀지만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러시아, 태국, 체코 등 일부 동유럽 국가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Fed의 출구전략이 추진될 경우 기회 요인이 더 많을 수 있는 국가(low crisis countries)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히 쌓아둔 한국, 중국, 멕시코 등이다. 오히려 미국의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이탈한 자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으면서 이들 국가로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