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O 규제' 넘어 중국 간 LG 서브원…존슨앤드존슨 뚫었다
2011년 대기업 계열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회사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대기업 MRO 회사들이 100원짜리 면장갑, 10원짜리 볼펜시장까지 장악해 중소 상공인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 것. 정부와 중소기업계에선 연일 대기업 MRO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급기야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 MRO 회사들의 신규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MRO 규제' 넘어 중국 간 LG 서브원…존슨앤드존슨 뚫었다
LG그룹 계열의 MRO 회사인 서브원(사장 박규석)도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2011년까지 매년 20% 가까이 성장하던 매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됐고, 영업이익 규모는 30%가량 급감했다. 규제에 발이 묶인 탓이다.

그랬던 서브원이 최근 해외 시장에서 ‘잭팟’을 터뜨렸다. 글로벌 MRO 강자들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생활·의약품 기업인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중국 내 구매관리 대행사업을 수주한 것. 국내 MRO 회사가 해외에서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서 빛 본 도전

4일 MRO 업계에 따르면 서브원은 지난달 존슨앤드존슨의 중국 4개 공장에 대한 구매관리서비스 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수주전에서 세계 최대 MRO 회사인 미국 그레인저와 IDG(미국), MAG45(네덜란드) 등 쟁쟁한 기업들을 제쳤다.

당초 업계에선 매출 규모나 글로벌 사업역량이 앞서는 미국과 유럽 쪽 MRO 기업이 사업을 수주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경쟁을 벌여 초등학생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서브원은 앞으로 1년간 베이징과 상하이, 시안, 쑤저우에 있는 존슨앤드존슨 4개 공장에 구매·조달시스템을 구축하고 기계부품, 화학용품, 포장재 등 1만여종의 자재를 독점 공급하게 된다. 초기 1년 계약규모는 45억원이지만, 연장계약이 일반적인 업계 관행을 감안하면 계약규모는 수백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브원 관계자는 “존슨앤드존슨 수주는 향후 중국 등 해외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로 발 묶인 국내 대신 해외 집중

서브원이 본격적으로 해외사업을 벌인 건 2011년(중국 사업 진출은 2005년)부터다. 그해 11월 동반위는 대기업 MRO에 대해 ‘같은 그룹 계열사와 연매출 3000억원 이상(규모가 작은 곳은 15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만 새로운 고객사로 확보할 수 있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MRO 사업을 확장하지 말라는 규제였다.

이 여파로 서브원의 국내 MRO 매출은 2011년 2조5191억원, 2012년 2조5252억원, 작년 2조5823억원으로 제자리를 걸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전사 기준)은 1961억원에서 138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서브원은 중국 난징법인에 최근 2년간 160여명의 구매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작년에는 55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새로 지었다. 이를 통해 중국에 진출한 한라공조, 넥센타이어, 한국타이어, 두원중공업 등 국내 기업 100여개사를 고객사로 확보한 데 이어 이번에 존슨앤드존슨을 고객 리스트에 추가했다. 중국을 포함한 해외매출도 2011년 4758억원에서 작년 6845억원으로 44% 늘었다.

◆다른 MRO 회사들은

서브원이 발 빠르게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과 달리 다른 대기업 MRO들은 규제 때문에 여전히 고전 중이다. 앞서 삼성은 동반위 규제가 나온 2011년 MRO 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터파크에 매각했고, SK도 MRO 계열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다.

KeP(코오롱 계열)와 엔투비(포스코 계열), HYMS(현대중공업 계열) 등 MRO 회사들은 기존 사업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2011년 매출 5536억원, 영업이익 75억원을 올렸던 KeP는 작년엔 매출 5076억원, 영업이익 14억원을 기록했다. 엔투비는 수익성이 조금 개선됐지만, 작년 영업이익률은 0.41%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기업 MRO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아이마켓코리아(인터파크 계열)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고 있을 뿐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