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에 참가 중인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무용수 김설진.
TV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9’에 참가 중인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무용수 김설진.
“대중에게 알려지려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몇 년이 걸려도 안 됐던 일이 단 몇 회 방송으로 이뤄진 게 신기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어요.”

케이블방송 엠넷(Mnet)의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에 참가 중인 무용수 김설진 씨(33)는 최근의 인기가 당황스럽다고 했다. 시청자들은 그의 춤을 보고 ‘갓(god)설진’이란 별명을 지어줬고, 페이스북을 비롯한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팬클럽이 생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그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단원으로 유럽 투어 무대에 선 전문 무용수다.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국내 무용계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참가자보단 심사위원석에 어울려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 무용수인 그가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게 됐을까. 지난해 10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무용수로 살아가는 고단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벨기에로 떠나기 전 국내에서 무용단을 꾸렸어요. 하지만 어렵게 공연을 무대에 올려도 관객이 없으니 수익을 낼 수 없었습니다. 작품 돌려막기로 버텼죠.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솔로 무대나 행사로 돈을 벌어야 했고 이로 충당하는 식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지쳐버렸죠.”

현대 무용수들을 만나보면 공통으로 털어놓는 이야기가 있다. 국내에선 작품 안무가가 공연의 모든 것을 떠안고 있다는 것. 김씨는 “유럽의 공연 유통 방식을 보면 극장이 예술단체의 작품을 사는 형식을 취한다. 극장이 공연의 홍보마케팅, 관람권 판매 등을 도맡아 하니 예술가들은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반면 국내에선 예술단체와 예술가가 무대세트, 의상, 조명, 홍보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극장은 대관료로 돈을 벌고, 티켓 수익도 나눠 간다”고 지적했다.

해외파 프로 무용수가 CJ 오디션 참가한 까닭은
무용수 김보람 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안무가가 제작, 기획, 안무, 홍보 모든 것을 혼자 맡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너무 크다”며 “공연만 생각하고 무대에 섰지만 지금 남은 것은 빚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와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들이 작업을 통해서 먹고살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댄싱9’을 통해 그의 꿈이 이뤄질까.

김인선 문화스포츠부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