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반올림 협상 공전 상황 장기화 불가피
이로써 특수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 등에서 근무하다 림프 조혈계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32명으로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환자 및 유족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권단체 반올림과 두 달째 직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4차 대화까지 뚜렷한 성과없이 공전하는 상황에서 사망자가 추가 발생, 협상 타결은 더욱 안갯속 국면이다.
5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23년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일하던 이범우(46)씨가 지난 1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이씨는 1986년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에 입사한 뒤 1991년 온양공장으로 옮겨 생산 현장에서 근무했다. 2005년부터는 일선 제조공정이 아닌 사무실 관리직으로 근무해왔다. 최근 천안 단국대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입원 한 달 만에 숨졌다.
반올림은 이씨가 반도체 공장 설비 유지 및 보수 업무를 장기간 담당하면서 특정 고농도 유해 화학물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씨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반올림이 확보한 온양공장 노동자 유사 피해사례는 40건에 달한다는게 반올림 측 설명이다. 이 중 백혈병 및 재생불량성 빈혈 등 림프 조혈계 환자는 12명이다.
삼성전자는 애도의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동고동락한 동료를 잃은 것이 회사의 가장 큰 슬픔"이라며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더 치열한 협상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이씨에게 삼성이 먼저 백배 사죄해야한다" 며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 및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한편 지난달 30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4차 협상를 진행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대화를 마쳤다. 반올림 측은 재발방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반올림 측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더이상 같은 문제의 환자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 며 "삼성전자는 그간 보상 문제만 거론했지 실질적인 작업장 관리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올림 측의 반복적 사과요구가 협상 발목을 잡고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협상 대표인 백수현 전무는 "대표이사를 포함해 우리 측이 3차례나 사과했지만 반올림이 사과 요구만 2시간 반이 넘게 계속해 대화가 지연됐다" 며 "가족 입장을 이해해 성실히 설명할 계획인만큼 반올림도 전향적으로 협상에 임해 진전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올림 측은 그간 삼성의 사과가 미흡하다고 판단, 보다 전향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재발방지 관련 삼성전자는 독립적 제3의 기구에 종합진단을 맡기자는 입장이다. 반올림은 반도체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화학물질부터 공개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우선 협상에 참여 중인 8명에 대한 보상 문제부터 한달 내로 신속히 해결하자고 제안한 반면 반올림은 산업재해 보상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해야한다고 맞서고 있어 협상은 장기화 국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