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계 1등에 취했던 한국 조선업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1등이라고 자만하면서 내실을 기하지는 못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국내 한 조선업체 관계자와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조선업은 ‘세계 1등’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금융위기 후 컨테이너선·벌크선 수요가 줄자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비중을 크게 늘렸는데, 이때도 조선사들은 이를 홍보하기에 바빴다. ‘세계 최대, 세계 최초’ 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실상은 달랐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해양플랜트는 국내 조선사들의 능력에 부치는 것이 많다”며 “일감이 없다 보니 닥치는 대로 싸게 수주했다가 뒷감당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의 말은 더 적나라하다. 그는 “해양플랜트를 우리 손으로 짓는다고 하지만 실제론 핵심 부품들을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조달해 ‘조립’한다”며 “최종 완성품에 대한 부가가치 기여도를 따져보면 한국 비중이 30%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초·최대 제품에 겁없이 도전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해외에서 더 비싼 부품을 조달해 쓰느라 원가가 훌쩍 뛰곤 했다. 경험 있는 인력도 태부족했다. 지난해까지 조선소 인근에서 흔히 눈에 띄었던 ‘무경험자 환영’이라는 구인광고는 제품의 경쟁력을 의심하게 했다. 그 결과는 올 들어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2분기에 1조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현장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더 흉흉하다. 업계에서는 대형 조선소들이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조선소 관련 커뮤니티에는 ‘조선사 1만명 감원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인력 구조조정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조선업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세계 1등’이라는 자만에 빠져 근본적인 경쟁력을 쌓지 못한 데 있다. 당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이익을 조금 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설계기술 인력을 더 늘리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키워내 앞으로 중국·일본의 조선소나 유럽의 설계·부품업체들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되찾는 게 시급하다.

이상은 산업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