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운데)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4층 연습실에서 손숙(왼쪽) 한명구 등과 연극 ‘가을 소나타’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운데)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4층 연습실에서 손숙(왼쪽) 한명구 등과 연극 ‘가을 소나타’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거기서 너무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작은아이 얘기가 나오면 이때까지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 사무적으로 얘기하라고. 야단치지 말고.”(임영웅)

“예예, 알겠습니다. 선생님.”(손숙)

지난 4일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4층 연극 ‘가을 소나타’ 연습 현장. 무대에서나 연습실에서나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대배우 손숙도 ‘이분’ 앞에서는 쩔쩔맨다. 올해 연출가로 데뷔한 지 60년이 되는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78)다.

곧이어 재개된 연습에서 손숙은 지시대로 톤을 바꿔 같은 대사를 이전보다 다소 부드럽게 말한다. “엘레나가 여기 있다는 걸 미리 얘기했어야지.”

손숙은 “제겐 평생의 스승이 두 분 계시는데 작고하신 이해랑 선생님과 바로 임영웅 선생님”이라며 “1999년 억울하게 환경부 장관직을 내놓고 상심해 있을 무렵 무대로 다시 이끌어 주신 분도 임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오는 22일부터 내달 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가을 소나타’는 임 대표의 연출 인생 60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하고, 연극계에서 이른바 ‘임영웅 사단’에 속하는 손숙 한명구 서은경 등이 출연한다.

“연출을 60년 했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감회는 다르죠. 나처럼 거의 쉬지 않고 60년간 연출해온 사람은 선배들 중에도 별로 없어요. 좋아하는 연극을 평생 해왔으니 난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신문 기자와 방송사 PD로 직장 생활도 했지만 그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연극뿐이었다. “연극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불안해져요. 배고프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연극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저는 조그만 소극장이라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1955년 서라벌예대 시절 ‘사육신’으로 데뷔한 후 100여 편의 연극·뮤지컬을 연출했다. ‘임영웅=고도’란 등식이 나올 만큼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해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꼽히는 ‘살짜기옵서예’, 여성연극 붐을 일으킨 ‘위기의 여자’ ‘엄마는 오십에 인생을 발견했다’ 등 한국 공연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연극은 살아 있는 사람(배우)이 살아 있는 사람(관객)에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잘 만든 연극은 잘 만든 영화보다 열 배는 강한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좋은 연극은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보다 뜻있는 삶을 생각하게 하고 본받게 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가을 소나타’도 그런 작품이다.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딸의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 갈등과 화해가 그려지면서 여자의 일생을 폭넓게 관조합니다. 관객들이 희망을 찾고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거예요.”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