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순신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순신 장군이 다시 뜨고 있다. 우리 역사인물 가운데 이순신만큼 조명받은 캐릭터도 없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 등은 대형 히트상품이었고, 중년 이상들은 김진규 주연의 ‘성웅 이순신’도 기억하고 있다.

이순신이 중요한 역사인물로 부각된 것은 대체로 1960년대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난극복의 장군으로 영웅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자 이순신에 대해 좋은 것이라면 민담이건 야사건 다 채집했다. 사료를 정확히 분석해 군사전략가로서의 이순신이 제대로 연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영화 그대로 봐도 좋지만 이왕이면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명량해전 직전 이순신은 백의종군 상태였다. 칠천량 해전에서 수군이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자 조정은 그를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시켰다. 선조는 차라리 육지에서 싸우라고 명했다. 이때 이순신이 올린 장계가 바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이다. 영화에서는 12척으로 300여척을 상대로 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는 13대 133이었다. 왜군은 300여척으로 조선 수군을 궤멸하려 했으나 이순신의 후퇴작전에 말려 결국 명량까지 이끌려왔다. 물목이 좁고 물살이 빨라 133척만 전선에 투입됐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을 거둔 천재적인 전략가였다. 그 전략의 핵심은 이길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움을 시작한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다. 그런데 명량해전은 달랐다. 거의 1 대 10의 수적 열세였다. 해전 전날 밤 이순신이 병사들 앞에서 병서를 인용해 한 말이 바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生卽必死 死卽必生)”이다. 명량해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투에서 이순신은 지형과 정보에서 미리 우위를 확보하고 싸웠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물목이 좁은 울돌목(명량)에서 싸우는 이유도 설명했다.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 즉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1000명의 적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두 전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 영화에서 1시간 분량을 차지하는 해전 장면이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철쇄 설치로 명량해전을 이겼다는 잘못된 주장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만 봐도 ‘명량’은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했다. ‘명량’을 계기로 성웅 이순신보다는 리더 이순신, 전략가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