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투명…외국인 투자 늘것"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규제"
삼성엔지니어링·동부제철·STX重 등 대상
금융당국이 감사인 강제 지정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가 STX 동양 등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를 부른 원인이란 판단에서 비롯됐다.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도 자기 입맛에 맞는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보니 ‘을’인 회계법인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갑’인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고, 이런 왜곡된 구조가 회계 투명성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상장사 10% 안팎 대상될 듯
한국경제신문이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1654개 상장사의 작년 말 기준 별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270개 기업(16.3%)이 재무상태 부실에 따른 감사인 지정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비율이 업종 평균의 1.5배 이상 높으면서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추려낸 결과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업종 평균보다 1.5배 이상이더라도 전체 상장사 평균 부채비율(84.4%)보다 낮을 경우 감사인 지정 대상에서 빼주기로 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다른 건전성 지표를 활용하는 금융회사도 제외된다. 동종 업체 수가 5개 미만인 경우 ‘업계 평균 부채비율’ 대신 ‘상장사 전체 평균 부채비율’을 강제지정 여부를 가르는 잣대로 쓴다.
업계에선 이런 예외조항을 적용하면 최종 감사인 지정 대상은 10%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관리종목 편입, 분식회계 적발 등의 이유로 강제 지정받는 기업(2013년 65개)과 자율협약체결 기업 중 채권단이 지정감사를 요구한 기업을 더하면 비율은 소폭 오를 수 있다.
건설 철강 해운 조선 등 불황 업종의 경우 감사인 지정 대상기업 수가 최대 20% 이상 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의 경우 삼성엔지니어링 신세계건설 동부건설 한라 등이 일단 이 기준에 해당된다. 철강금속업종에선 동부제철 동국제강 포스코강판 등이, 조선업종에선 STX중공업 오리엔탈정공 등이 대상이다.
◆기업들 “상장사 벌주기냐” 성토
금융당국은 감사인 지정제가 확대되면 국내 회계투명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계법인이 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와 국회는 ‘특정 기업의 지정감사로 선임된 회계법인은 이듬해 해당기업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조항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인에 관한 법률에 집어넣었다. 지정감사인으로 선임된 회계법인이 다음해 감사업무를 수주할 목적으로 기업 편의를 봐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내 증시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낮은 회계투명성 문제가 해소되면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경기 부양과 엇박자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선 그러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율적으로 선임할 때보다 감사비용이 평균 54%(2013년 기준) 늘어나는 데다 훨씬 ‘깐깐한’ 감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감사인 지정제가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는 점도 기업들의 반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도 정부가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하는 곳은 없다”며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한 정부 스스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쪽에선 상장 활성화 정책을 만들면서 다른 한쪽에선 상장사에만 적용되는 규제를 신설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하수정/오상헌 기자 agatt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