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더 많은 파이를 원하는 인간의 탐욕, 파국 부른다
2013년 4월12일. 금요일이던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가 개장하자마자 갑자기 금 100t짜리 매도 주문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어마어마한 매도 물량이 시장을 덮쳤고 금 가격은 대폭 하락했다. 두 시간가량 지나 시장이 안정을 찾을 무렵 300t의 매도 물량이 다시 쏟아졌다. 이는 2012년 전 세계 금 생산량의 11%에 이르는 규모였다. 온스당 1521달러였던 금 가격은 이날 오후 5시께 1476달러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국제금융학자 쑹훙빙(사진)은《탐욕 경제》에서 이날 사건을 두고 ‘4·12 황금 대학살’이라며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가 금 시장에 탄압을 가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양적완화(QE) 정책을 펴고 달러화를 남발한 미국이 자국 화폐가치 하락을 막으려고 금 선물 가격의 폭락을 의도적으로 유도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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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 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긍정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위험 회피 수단으로서의 금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논리였다. 또 다른 근거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 증시가 거론됐다. 하지만 쑹훙빙은 이 역시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증시 폭발의 원동력은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 행위였고 이들의 자금은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것이었다. 채권시장 활성화는 양적완화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쉽게 말해 미국 금융시장의 비정상적 호황은 양적완화 정책에서 비롯된 초저금리 환경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2008년 이후 미국 상위 10% 부자의 국민소득 점유율이 50%를 돌파했다며 “10%의 부자에게 국민소득 50% 이상이 돌아갈 경우 큰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제도적 힘에 의해 현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부의 분열은 중산층의 소비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다”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경제가 회복하지 못한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저금리 통화정책은 실물 경제에 대한 재투자 열정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소득 일자리 창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인간 내면에 숨겨진 탐욕이라는 악마 같은 본성을 다시 일깨웠을 뿐”이라고 일갈한다.

금융시장의 거품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하다는 설명이다. 금융자산 투자 수익률이 사업 경영 이윤보다 높아지면서 고용 창출, 설비 투자 등을 위한 자본이 금융시장으로 대거 몰리면서 세계 경제 회복도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의 정책적 실책은 부차적 원인”이라며 “금융 세력 집단이 주도한 화폐정책이야말로 만악(萬惡)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가급적 빨리 종료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 금리 급등세를 막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할 경우 2008년 위기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현대 경제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00년 전으로 시야를 넓혀 로마와 북송의 흥망성쇠를 경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화폐 경제가 발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큰 번영을 누렸지만 정치체제가 자정 능력을 상실하자 토지 겸병, 조세 불균형, 재정적자, 화폐가치 하락 등 폐단이 똑같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극심한 빈부 격차가 나타났고 결국 국가가 무너지고 말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로마와 북송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책을 끝맺고 있다. “탐욕이 과하면 부의 집중이 생긴다. 토지 집중은 조세 체계를 기형적으로 변화시킨다. 국고가 비면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국민의 재력이 고갈되면 내란과 외환이 따른다.”

저자는 2007년 출간된《화폐 전쟁》을 통해 이듬해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와 금 시장 변화를 예측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이 책은 《화폐 전쟁》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