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생의 반환점
‘42.195㎞’ 듣기만 해도 까마득한 거리지만 마라톤 코스를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어느덧 절반을 알리는 반환점이 눈앞에 보인다. 반환점을 앞둔 마라토너의 생각은 둘 중 하나다. ‘이제 겨우 반환점이잖아. 나머지 반을 어떻게 또 달리지’와 ‘반환점이구나.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다. 어느 마라토너가 더 좋은 레이스를 펼치게 될지는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여기서 ‘좋은 레이스’는 꼭 좋은 기록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다르겠지만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은 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즐겁게 달렸다면 좋은 레이스를 한 것이다.

나 역시 마라톤을 뛸 때 반환점에서는 ‘열심히 뛰어왔네. 여기서 다시 정비해 새로 시작해야지’라며 심기일전한다. 반환점을 돌 때 이미 진이 빠지기 시작해 ‘나머지 반을 어떻게 달리나’하는 사람은 후반전의 21㎞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마라톤에서 좋은 레이스를 벌였는가를 판가름하는 진짜 중요한 기록은 반환점 이전까지가 아니라 반환점 이후부터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풀 코스 마라톤에서 반환점은 55세다. 부모 그늘에서 20년 동안 미성년자로 살아온 것은 업혀서 달려온 거나 마찬가지다. 전체 수명을 90년으로 보면 성인이 돼 제힘으로 뛰는 것은 70년이다. 70년을 반으로 나누면 결국 1차 정년은 55세 언저리다. 반환점밖에 안 왔는데,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많나. 평생 직업을 서너 개는 가져야 할 것이다.”

1차 정년 후에도 길게는 40년 넘게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고 사나. 반환점 이후 삶을 위해 틈틈이 자기계발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면 비로소 삶의 활력이 생긴다.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심기일전하려면 스스로가 굉장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용기다. 타이틀이 예전 같지 않아도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달리는 자세가 중요하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 때 과거의 향수에 젖어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일과 미래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레이스가 훨씬 즐겁지 않겠는가.

조웅래 < 맥키스 회장 wrcho@themacki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