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病 아닌 情 넘치는 소록도…어르신과 웃고 울며 벌써 20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마스크 없이 고름 치료
아랫입술 재건수술 독자 개발…한센병 환자 입술처짐 고쳐
1억 상금 전액 기부
"옷 사줄까" 말했더니 아내 핀잔…기아대책본부에 쾌척 결정
온가족 10년째 해외 봉사…소록도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
딸 학원 보낼 돈 모아 경비 마련…동남아 낙후지역서 5박6일 봉사
아랫입술 재건수술 독자 개발…한센병 환자 입술처짐 고쳐
1억 상금 전액 기부
"옷 사줄까" 말했더니 아내 핀잔…기아대책본부에 쾌척 결정
온가족 10년째 해외 봉사…소록도서 결혼하고 아이 낳아
딸 학원 보낼 돈 모아 경비 마련…동남아 낙후지역서 5박6일 봉사
“여보, 상금 받으면 정장 한 벌 사줄까?”
“그게 당신 돈이에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20년째 한센인을 돌보고 있는 오동찬 의료부장(46). 지난달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2회 성천상 수상자로 결정된 그는 상금이 1억원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잠깐 고민하다 아내에게 정장 얘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돈은 욕심을 낳는다.” 오 부장은 상금 1억원 전액을 기아대책본부에 기부하기로 했다. 고1 큰딸이 “우리 아빠 멋쟁이”라고 추켜세웠다. 가슴 저 밑에서 뿌듯함과 대견함이 밀려왔다.
오 부장은 “상금이 차라리 500만원이나 1000만원 정도였으면 해외봉사 나갈 때 경비로 쓸 텐데, 생전 만져보지 못한 큰 돈이라 ‘내 돈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한사코 자신이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인터뷰하는 동안 계속 반문했다.
“소록도에서 20년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재미있게 지낸 것뿐인데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게 우리 사회의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류 뿌리치고 택한 소록도행
소록도와의 인연은 부친에게서 비롯됐다. “제가 조선대 치대 본과 2학년일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이 소록도 분교로 보이스카우트단 여름캠프를 가셨어요. 아버지를 도와주러 가서 처음 소록도와 한센인들을 알게 됐죠.”
졸업 후 한림대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그는 공중보건의 지역으로 소록도병원을 찍었다. 그의 결정에 소록도와 인연을 맺게 해준 부친마저 착잡해했다고 한다. 말기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반대는 강경했다.
“인턴까지 마쳐 좋은 지역에 갈 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는데 신청 지역 맨 마지막에 있는 소록도병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경쟁 상대도 없겠다 싶어 신청했죠. 그랬더니 ‘형, 고마워’ 하는 후배도 있고 ‘형, 왜 거길 가요’ 하고 말리는 후배까지 반응이 다양했어요.”
그가 소록도행을 택한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말기암 수술을 받으면 최장 5년까지 살 수 있었어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매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수술 후 5년가량 버텨내셨어요.”
‘아랫입술 재건 수술’ 개발
오 부장은 소록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드디어 내가 할 일을 찾았다는 마음에 행복했다”고 했다. 그가 공중보건의를 시작한 1995년 소록도 한센인들의 구강 상태는 엉망이었다. 뭉뚱그려진 손 때문에 제대로 칫솔질을 할 수 없어 입 속에 고름이 찬 환자도 있었다.
1년 만에 떠나버리는 의사들에 익숙한 환자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오 부장은 환자들이 불편해할까 봐 마스크도 쓰지 않고 진료했다. 공중보건의 월급 23만원으로는 전동칫솔과 틀니를 사서 돌렸다.
“손이 불편해 양치질을 못하니까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았죠. 흔들리는 이를 모두 뽑고 인공뼈를 넣는데, 문제는 아랫입술이 처지는 후유증이 생기는 것이었어요.”
근원적으로 처방하기 위해 문헌을 뒤져가며 독학으로 ‘아랫입술 재건 수술’을 개발해냈다. 지금까지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수술법으로 수술받은 환자만 400명에 달한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섬
오 부장은 인터뷰 내내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를 강조했다. “사람들은 제가 한센병 환자들과 지낸 줄 알지만 한때 한센병을 앓았다 완치된 일반 어르신들이에요. 소록도병원을 수백명의 의사, 간호사가 거쳐갔지만 전염됐다는 얘기를 못들어 봤잖아요. 한센병균은 햇빛에만 노출돼도 죽는 아주 약한 균입니다. 치료약이 국내에서는 1980년대에 상용화됐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무서운 병으로 잘못 알려진 겁니다.”
오 부장은 “겉만 멀쩡해 보이는 저보다 소록도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훨씬 선하고 마음이 여린 분들”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소록도 어르신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바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일인 양 걱정해주시기 때문에 제가 외지로 출장을 나가면 이렇게 전화를 하신다”고 했다.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20여년간 동고동락해온 오 부장을 자식처럼 대하는 듯했다. 오 부장이 1997년 결혼할 때 소록도 한센인들은 300원, 500원의 쌈짓돈을 축의금으로 내놨다. 한센인들이 섬에 들어오기 전에는 500원이 큰 돈이었지만 섬에 들어온 지 오래돼 화폐에 대한 개념이 옅어졌기 때문이란다. 바깥세계와 ‘단절의 세월’이 담긴 축의금이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매달 50만원 저축해 해외봉사
오 부장은 두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그 돈을 아껴 매달 50만원씩 적금에 붓고 있다. 1년에 두세 번씩 온 가족이 떠나는 해외봉사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해외봉사 활동이 벌써 10년째다.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 한센병이 아직 미완치 상태로 남아 있는 나라들을 주로 찾고 있다.
소록도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부인과 두 딸은 해외봉사에서 훌륭한 보조원 역할을 하고 있다. 5박6일 일정의 경비는 300만원 내외. 가장 싼 비행기와 숙박시설을 이용해 예산을 아끼고 100만원가량은 현지에서 무료 급식비로 지원한다. 온 가족이 가는 해외봉사에 대해 오 부장은 “함께 가면 돌아올 때 남아 있는 가족 선물 걱정을 안 해서 좋지 않으냐”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해외봉사는 최소한 4명이 움직여야 진료가 가능하거든요. 간호사 출신인 아내는 의료기구 소독 등을 담당하고 큰딸은 통역, 둘째는 허드렛일을 돕습니다. 낙후지역이다 보니 한센병 환자는 물론이고 노약자 농활인까지 가리지 않아요. 한번은 8시간 동안 이빨만 뽑았더니 오른손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올초 필리핀 해외봉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큰딸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김해공항 주차비가 5만원이 나오는 걸 본 딸이 ‘아빠, 그 돈이면 60명 무료급식을 해줄 수 있잖아’라고 야단을 쳐서 혼났어요.”
10년 만에 소록도에 뭉친 가족
두 딸은 소록도에서 태어났다. 큰딸이 일곱 살 때 부인과 애들은 순천에 나가 살고 오 부장은 소록도 관사에서 지내는 ‘기러기 생활’을 10년째 했다. 큰딸이 올해 순천의 한 여고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바람에 엄마, 동생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온 가족이 다시 소록도에 모였다.
“세월호 사건을 보고 나서 ‘이산가족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가족회의에서 ‘너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소록도)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아이들이 따라줬어요. 요즘 가장 행복한 것은 10년 만에 온 가족이 한 밥상에서 아침밥을 먹는 겁니다.”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녀에 대한 믿음이 남달라 보였다. 그는 “큰딸은 의사가 돼서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고 둘째는 과학에 관심이 많다”며 “내면이 건강한 아이들이라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 부장의 꿈은 은퇴 후 동남아 한센인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는 “소록도에서 정년까지 일한 뒤 떠날 생각”이라며 웃었다.
한국은 한센병 완치국가…"결핵 주사로도 99.9% 예방 가능"
한센병은
한센병은 일반인에게 나병으로 더 많이 알려진 질병이다. 완치율이 100%로 한국에서는 사라진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한센병 완치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회의 편견과 의약품 부재로 병을 숨긴 탓에 치명상을 입은 환자가 적지 않았다. ‘3년은 모르고 살고 3년은 숨기고 살고 3년은 참고 산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알리지 못한 병이다.
나균이 말초신경을 공격해 손과 발이 뭉개지고 시신경 손실로 시력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나균은 연구를 위한 배양조차 쉽지 않을 만큼 ‘약한 병균’이다.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한센병을 옮기는 나균은 결핵보다 약한 병균”이라며 “결핵 예방주사만 맞아도 한센병 예방 효과가 99.9%에 달한다는 학술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약하고 전염도 잘 되지 않는 병이라는 얘기이다.
현재 소록도에는 570명의 한센인이 살고 있다. 오 부장은 “정확하게는 한때 한센병을 앓아 외모에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정상인 어르신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록도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한센병 때문이 아니라 협심증 당뇨병 고혈압 등 일반적인 노인성 질환을 앓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슈바이처' 발굴·격려…지난해 첫 수상자 배출
성천賞은
성천상은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이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한 상이다. JW중외그룹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사장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 인술을 펼친 ‘참 의료인’에게 주는 상이다.
1회 때(지난해)는 벨기에 출신인 배현정(본명 마리 헬렌 브라쇠르) 전진상의원 원장이 받았다. 배 원장은 1972년 봉사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 단원으로 한국에 와 1975년 시흥동 판자촌에 무료 진료소 ‘전진상 가정복지센터’를 설립, 39만여명의 저소득층에 인술을 베풀고 장학금을 줬다.
2회 시상식은 오는 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그게 당신 돈이에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20년째 한센인을 돌보고 있는 오동찬 의료부장(46). 지난달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2회 성천상 수상자로 결정된 그는 상금이 1억원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잠깐 고민하다 아내에게 정장 얘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돈은 욕심을 낳는다.” 오 부장은 상금 1억원 전액을 기아대책본부에 기부하기로 했다. 고1 큰딸이 “우리 아빠 멋쟁이”라고 추켜세웠다. 가슴 저 밑에서 뿌듯함과 대견함이 밀려왔다.
오 부장은 “상금이 차라리 500만원이나 1000만원 정도였으면 해외봉사 나갈 때 경비로 쓸 텐데, 생전 만져보지 못한 큰 돈이라 ‘내 돈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한사코 자신이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인터뷰하는 동안 계속 반문했다.
“소록도에서 20년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재미있게 지낸 것뿐인데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게 우리 사회의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반영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류 뿌리치고 택한 소록도행
소록도와의 인연은 부친에게서 비롯됐다. “제가 조선대 치대 본과 2학년일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이 소록도 분교로 보이스카우트단 여름캠프를 가셨어요. 아버지를 도와주러 가서 처음 소록도와 한센인들을 알게 됐죠.”
졸업 후 한림대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그는 공중보건의 지역으로 소록도병원을 찍었다. 그의 결정에 소록도와 인연을 맺게 해준 부친마저 착잡해했다고 한다. 말기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반대는 강경했다.
“인턴까지 마쳐 좋은 지역에 갈 수 있는 우선권이 있었는데 신청 지역 맨 마지막에 있는 소록도병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경쟁 상대도 없겠다 싶어 신청했죠. 그랬더니 ‘형, 고마워’ 하는 후배도 있고 ‘형, 왜 거길 가요’ 하고 말리는 후배까지 반응이 다양했어요.”
그가 소록도행을 택한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말기암 수술을 받으면 최장 5년까지 살 수 있었어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매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수술 후 5년가량 버텨내셨어요.”
‘아랫입술 재건 수술’ 개발
오 부장은 소록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드디어 내가 할 일을 찾았다는 마음에 행복했다”고 했다. 그가 공중보건의를 시작한 1995년 소록도 한센인들의 구강 상태는 엉망이었다. 뭉뚱그려진 손 때문에 제대로 칫솔질을 할 수 없어 입 속에 고름이 찬 환자도 있었다.
1년 만에 떠나버리는 의사들에 익숙한 환자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오 부장은 환자들이 불편해할까 봐 마스크도 쓰지 않고 진료했다. 공중보건의 월급 23만원으로는 전동칫솔과 틀니를 사서 돌렸다.
“손이 불편해 양치질을 못하니까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았죠. 흔들리는 이를 모두 뽑고 인공뼈를 넣는데, 문제는 아랫입술이 처지는 후유증이 생기는 것이었어요.”
근원적으로 처방하기 위해 문헌을 뒤져가며 독학으로 ‘아랫입술 재건 수술’을 개발해냈다. 지금까지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수술법으로 수술받은 환자만 400명에 달한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섬
오 부장은 인터뷰 내내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를 강조했다. “사람들은 제가 한센병 환자들과 지낸 줄 알지만 한때 한센병을 앓았다 완치된 일반 어르신들이에요. 소록도병원을 수백명의 의사, 간호사가 거쳐갔지만 전염됐다는 얘기를 못들어 봤잖아요. 한센병균은 햇빛에만 노출돼도 죽는 아주 약한 균입니다. 치료약이 국내에서는 1980년대에 상용화됐습니다. 사회적 편견으로 무서운 병으로 잘못 알려진 겁니다.”
오 부장은 “겉만 멀쩡해 보이는 저보다 소록도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훨씬 선하고 마음이 여린 분들”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소록도 어르신들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바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일인 양 걱정해주시기 때문에 제가 외지로 출장을 나가면 이렇게 전화를 하신다”고 했다.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20여년간 동고동락해온 오 부장을 자식처럼 대하는 듯했다. 오 부장이 1997년 결혼할 때 소록도 한센인들은 300원, 500원의 쌈짓돈을 축의금으로 내놨다. 한센인들이 섬에 들어오기 전에는 500원이 큰 돈이었지만 섬에 들어온 지 오래돼 화폐에 대한 개념이 옅어졌기 때문이란다. 바깥세계와 ‘단절의 세월’이 담긴 축의금이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매달 50만원 저축해 해외봉사
오 부장은 두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그 돈을 아껴 매달 50만원씩 적금에 붓고 있다. 1년에 두세 번씩 온 가족이 떠나는 해외봉사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해외봉사 활동이 벌써 10년째다.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 한센병이 아직 미완치 상태로 남아 있는 나라들을 주로 찾고 있다.
소록도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부인과 두 딸은 해외봉사에서 훌륭한 보조원 역할을 하고 있다. 5박6일 일정의 경비는 300만원 내외. 가장 싼 비행기와 숙박시설을 이용해 예산을 아끼고 100만원가량은 현지에서 무료 급식비로 지원한다. 온 가족이 가는 해외봉사에 대해 오 부장은 “함께 가면 돌아올 때 남아 있는 가족 선물 걱정을 안 해서 좋지 않으냐”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해외봉사는 최소한 4명이 움직여야 진료가 가능하거든요. 간호사 출신인 아내는 의료기구 소독 등을 담당하고 큰딸은 통역, 둘째는 허드렛일을 돕습니다. 낙후지역이다 보니 한센병 환자는 물론이고 노약자 농활인까지 가리지 않아요. 한번은 8시간 동안 이빨만 뽑았더니 오른손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올초 필리핀 해외봉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큰딸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김해공항 주차비가 5만원이 나오는 걸 본 딸이 ‘아빠, 그 돈이면 60명 무료급식을 해줄 수 있잖아’라고 야단을 쳐서 혼났어요.”
10년 만에 소록도에 뭉친 가족
두 딸은 소록도에서 태어났다. 큰딸이 일곱 살 때 부인과 애들은 순천에 나가 살고 오 부장은 소록도 관사에서 지내는 ‘기러기 생활’을 10년째 했다. 큰딸이 올해 순천의 한 여고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바람에 엄마, 동생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온 가족이 다시 소록도에 모였다.
“세월호 사건을 보고 나서 ‘이산가족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가족회의에서 ‘너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소록도)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아이들이 따라줬어요. 요즘 가장 행복한 것은 10년 만에 온 가족이 한 밥상에서 아침밥을 먹는 겁니다.”
대학입시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녀에 대한 믿음이 남달라 보였다. 그는 “큰딸은 의사가 돼서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고 둘째는 과학에 관심이 많다”며 “내면이 건강한 아이들이라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 부장의 꿈은 은퇴 후 동남아 한센인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는 “소록도에서 정년까지 일한 뒤 떠날 생각”이라며 웃었다.
한국은 한센병 완치국가…"결핵 주사로도 99.9% 예방 가능"
한센병은
한센병은 일반인에게 나병으로 더 많이 알려진 질병이다. 완치율이 100%로 한국에서는 사라진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한센병 완치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회의 편견과 의약품 부재로 병을 숨긴 탓에 치명상을 입은 환자가 적지 않았다. ‘3년은 모르고 살고 3년은 숨기고 살고 3년은 참고 산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알리지 못한 병이다.
나균이 말초신경을 공격해 손과 발이 뭉개지고 시신경 손실로 시력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나균은 연구를 위한 배양조차 쉽지 않을 만큼 ‘약한 병균’이다.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한센병을 옮기는 나균은 결핵보다 약한 병균”이라며 “결핵 예방주사만 맞아도 한센병 예방 효과가 99.9%에 달한다는 학술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약하고 전염도 잘 되지 않는 병이라는 얘기이다.
현재 소록도에는 570명의 한센인이 살고 있다. 오 부장은 “정확하게는 한때 한센병을 앓아 외모에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정상인 어르신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록도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한센병 때문이 아니라 협심증 당뇨병 고혈압 등 일반적인 노인성 질환을 앓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슈바이처' 발굴·격려…지난해 첫 수상자 배출
성천賞은
성천상은 중외학술복지재단(이사장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이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한 상이다. JW중외그룹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사장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 인술을 펼친 ‘참 의료인’에게 주는 상이다.
1회 때(지난해)는 벨기에 출신인 배현정(본명 마리 헬렌 브라쇠르) 전진상의원 원장이 받았다. 배 원장은 1972년 봉사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 단원으로 한국에 와 1975년 시흥동 판자촌에 무료 진료소 ‘전진상 가정복지센터’를 설립, 39만여명의 저소득층에 인술을 베풀고 장학금을 줬다.
2회 시상식은 오는 26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