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오하는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등과 함께 세계 5대 와인 산지로 꼽힌다. 그 역사적 배경에는 포도나무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필록세라(포도나무뿌리진디)’가 있다. 필록세라는 진딧물의 일종으로 19세기에 미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했다. 특히 프랑스 포도원의 75%가 파괴돼 현지 와인 생산자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야 했다. 그중 보르도 지역 생산자들은 거리가 가깝고 토양 특성이 비슷한 리오하로 이주했다. 리오하 와인은 선진 와인 제조기술을 전수받고 혁신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 현재 리오하는 약 112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 포도 재배면적을 자랑한다.
직접 만난 리오하의 풍경은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실감케 한다. 들판과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풍경이 지루해질 무렵, 갑자기 하늘의 열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7~9월에는 열기구나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서 리오하의 경치를 감상하거나 승마로 포도밭 사이를 누빌 수 있다. 일반 도로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들판과 포도밭 풍경이 높은 곳에서는 환상적으로 변한다.
보통 열기구 체험은 새벽에 시작된다. 해와 함께 떠오르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로 풍선을 부풀리고 바구니에 올라 날아오르면, 눈앞에 눈부신 태양과 아침 하늘이 펼쳐진다. 그 아찔한 풍경은 눈을 깜빡이기도 아까울 만큼 대단하다. 한 시간 정도 상공을 누비고 나서 수료증을 받은 다음에는 리오하 와인으로 축배를 나누며 특별한 경험을 기념한다. 참가자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웃음을 터뜨린다.

레드와인이 유명한 리오하 여행의 정수는 역시 와이너리(와인농장) 투어다. 포도가 자라는 토양,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양조장에서의 시음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오하에서 손꼽히는 와이너리 중 하나는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Marques de Caceres)’다. 1970년에 설립된 이 젊은 와이너리는 전 세계 120개국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을 만큼 호평을 받고 있다. 와이너리 관계자의 안내로 먼저 포도밭을 돌아봤다. 몇 세기의 시간이 쌓인 오래된 밭과 현대적 재배 방식으로 균일하게 정비된 밭 사이에서 현격한 시간 차이가 느껴진다.

점심에는 음식과 함께 그에 어울리는 여러 와인을 맛보았다. 그중에서 긴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한정된 수량만 생산된다는 ‘가우디움(Gaudium)’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아하고 깊은 맛에서 리오하 와인의 명성이 피부에 와 닿았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만졌던 포도의 감촉이 문득 떠올랐다. 그 포도들은 몇 년 후 좋은 와인이 돼 한국에 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모금 머금으면 리오하의 토양과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되살아나겠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 했다. 벌써부터 그리움이 차오른다. 아디오스, 리오하!
와이너리 투어 정보
리오하 와인 생산지를 둘러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공법은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 라리오하 관광안내소(lariojaturismo.com)에서 방문 가능한 와이너리들을 자세히 안내한다.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사면 시중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 외부 활동을 선호하는 여행자라면 액티비티와 결합한 투어 프로그램을 즐겨보자. 열기구 타기(globosarcoiris.com), 글라이더(alberguedelumbreras.es), 승마(hipicanavarrete.com)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리오하(스페인)=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