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머피 크리스티 최고경영자가 뉴욕 집무실에서 세계 미술시장의 최근 경향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스티븐 머피 크리스티 최고경영자가 뉴욕 집무실에서 세계 미술시장의 최근 경향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크리스티 제공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세계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세계 미술 경매 시장의 총 거래액은 사상 최고치인 120억달러(약 13조원)를 기록했다. 2009년 46억달러로 급감했던 미술품 낙찰액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새 기록을 쓴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올 상반기 45억달러(약 4조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반기 실적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제스(Mei Moses) 지수도 2012년 초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스티븐 머피 크리스티 최고경영자(CEO·60)는 “신규 고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국제 미술시장은 당분간 추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크리스티는 향후 5년간 미술품 온라인 시장 확대와 30~40대 신규 고객 유치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9월 취임해 미국 뉴욕에서 세계 미술품 경매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그에게 전화와 서면을 통해 국제 미술시장의 최근 경향과 전망을 들어봤다.

▷하반기 이후 세계 미술시장을 어떻게 보나.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국제 미술시장은 하반기에 활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에는 (2차 세계대전) 전후 현대 미술품 경매 부문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크리스티는 전후 미술품 경매에서 평균 80%대의 낙찰률로 13억달러어치를 판매했다.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 31% 증가했다. 지난 5월 뉴욕에서 실시한 전후 현대미술 경매에는 하루 동안 7억4490만달러의 ‘뭉칫돈’이 유입됐다.”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트렌드와 특징은 무엇인가.

“중국 컬렉터들이 뉴욕 런던 홍콩 파리 등 세계 경매장에서 작품을 대거 구입하고 있다. 중국 본토 고객들은 크리스티 총 판매액의 24% 정도를 차지하면서 세 번째로 큰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올 상반기 최고가(8416만달러·약 870억원)에 낙찰된 미국화가 바넷 뉴먼의 작품 ‘블랙 파이어Ⅰ’과 스티븐 머피.
올 상반기 최고가(8416만달러·약 870억원)에 낙찰된 미국화가 바넷 뉴먼의 작품 ‘블랙 파이어Ⅰ’과 스티븐 머피.
▷미술품이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유럽 재정위기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세계적인 부호들이 주식·외환시장, 부동산 사업에 편중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미술품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마켓은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구매자들은 작품 구입 전에 충분히 리스크 분석을 마쳐야 한다.”

▷요즘 투자할 만한 작가들을 추천해 달라.

“미술품은 좋은 투자 수단이다. 희소성 있고 수준 높은 작품을 소유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경쟁한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오른다. 경매 때마다 가격이 경신되는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즘 투자할 만한 현대 작가로는 미국의 색면추상 화가 바넷 뉴먼·마크 로스코, 영국 작가 프랜시스 베이컨,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을 들 수 있다. 아시아 작가로는 쩡판즈, 장샤오강, 나라 요시토모, 무라카미 다카시, 김환기, 백남준, 이우환, 강형구, 홍경택 등이 좋은 투자 대상이다.”

▷투자에 대해 미술 애호가들에게 조언한다면….

“우선 작품을 본 뒤 자신의 느낌, 반응을 잘 살피는 게 중요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품이 있고, 작품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정말 찾고자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미술품의 가치는 작품의 질(quality), 희귀성(rarity), 컨디션(condition), 소장 내역(provenance), 트렌드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요건들이기도 하다. 경매장, 갤러리, 박물관 같은 장소를 자주 방문하는 것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크리스티는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소더비를 제치고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됐다. 성공 비결과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크리스티는 글로벌 디지털 전략에서 21세기의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되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옥션이 설립된) 18세기의 전통과 성향을 진실되게 유지하려고 한다. 크리스티에서 전통(heritage)은 매우 중요하다. 미술과 고객을 순수하게 연결시켜 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전략이다. 사람들에게 최고의 걸작을 선보이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최고’를 고집하는 크리스티의 전통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통해 잘 유지되고 있다.”

▷크리스티는 다른 분야 진출도 활발한데,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발맞춰 프라이빗 세일, 온라인 경매 등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프라이빗 세일은 고객들이 기존 경매 스케줄의 제약에서 벗어나 관심있는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온라인 경매는 직접 경매장에 참석해야만 하는 불편을 덜어주고 세계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접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상반기 크리스티 경매에서 온라인 경매 낙찰자들의 지출액이 작년보다 71% 증가했다. 크리스티의 온라인 경매 매출은 1억4800만달러(약 1500억원)로 전체 비중은 낮지만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2012년 이미 상하이에 지사를 설립했고, 홍콩에는 전시 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오는 10월에는 상하이 지점에 새 전시장을 열 예정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CEO 역할이 궁금하다.

“고객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연구, 계획, 실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45세 이하 새내기 컬렉터들의 욕구를 파악한다. 최근 아이패드와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여 디지털 세대가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쉽게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올 상반기까지 무려 230만명의 사용자가 크리스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았다.”

▷한국 미술시장은 어떤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다. 미술시장도 경제 규모에 맞춰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컬렉터들은 1970년대부터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인상주의와 현대미술 부문에 관심을 보인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첨단기술 강국’이라는 이점을 활용하면 미술시장과 관련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멋지고 훌륭한 화랑도 많아 시장 잠재력이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 높은 편이다.”

스티븐 머피는

출판·음악 마케팅에도 일가견
"매일 아침 요가로 체력 다지죠"


미국 조지타운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스티븐 머피는 1985년 출판사 사이먼앤드슈스터에 입사하며 문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영국의 세계적인 음반회사 EMI뮤직 대표(1991~1998년), 디즈니퍼블리싱월드와이드 부사장 겸 대표이사를 거쳐 2000년에는 미국의 건강 관련 전문 출판사 로데일에 영입돼 이듬해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2010년 크리스티의 CEO로 전격 영입된 그는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며 맞수인 소더비를 압도했다. 재직 기간 프라이빗 세일과 온라인 경매에 역량을 집중한 머피는 지난해 미술품을 비롯해 와인, 패션, 유명 수집품 등 49차례의 온라인 경매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약 2000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했고, 이 중 45%는 온라인 신규 고객을 통해 창출했다.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며 체력을 다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