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데이비드 조너선 린튼(앞줄 왼쪽 두 번째), 황교안 법무부 장관(세 번째),  유진동 선생의 아들 유수동 씨(네 번째) 등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데이비드 조너선 린튼(앞줄 왼쪽 두 번째), 황교안 법무부 장관(세 번째), 유진동 선생의 아들 유수동 씨(네 번째) 등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인정받아 한국에 특별귀화한 사람이 있다. 데이비드 조너선 린튼 CJ E&M 미국 변호사(43·한국명 인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린튼 변호사는 11일 법무부가 과천시 청사 대회의실에서 연 ‘광복절 기념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해 증서를 받고 이날부터 법적으로 한국인이 됐다. 본인이 원하는 한 미국·한국 복수국적을 유지하게 된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아 지금까지 모두 908명(올해 16명)의 특별귀화를 허가했다.

린튼 변호사의 가족은 조상 대대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인돈)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선교사로 처음 조선 땅을 밟았다. 그는 1895년 선교를 위해 한국에 온 유진 벨 선생의 딸과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뒀다. 그는 조선인에게 성경과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독립운동 소식을 외국신문에 기고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일제에 의해 추방당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다시 입국해 대전대(현 한남대) 총장을 지내는 등 계몽활동에 힘썼다. 한국 독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정부로부터 애국장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작은아버지인 스티브 린튼(인세반)은 북한 주민에게 결핵약을 지원해온 유진벨재단 회장이다. 한국 이름 ‘인요한’으로 더욱 유명한 존 린튼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도 그의 작은아버지다. 린튼 변호사는 어린 시절은 미국에서 보냈지만 컬럼비아대를 다니던 1993년 서울대로 유학을 와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서울대 시절 신림동 고시촌의 24만원짜리 원룸에서 친구 2명과 자취를 했는데 당시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한국에 대한 애정도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유학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변호사로 일했으나 ‘한국인의 정(情)’이 그리워 이내 다시 돌아왔다. 2007년 한국으로 다시 온 린튼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에서 일하다가 2011년 CJ E&M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이날 국적증서를 받은 사람 가운데는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로 알려진 유진동 선생의 아들 유수동 씨도 있다. 유 선생은 광복군 사령부 군의처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냈고 2007년 정부에서 애국장을 받았다. 유씨는 가족들과 함께 당초 북한에서 살았으나 1963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정착했다. 그는 “아버지는 아리랑과 도라지 노래를 자주 불러주는 등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민족 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한경희 선생의 손녀 한모씨도 이날 국적증서를 받았다. 중국 옌볜에서 태어난 한씨는 35년간 조선족학교 교사로 일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에 귀화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