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의 누드화를 보면 후기로 갈수록 살결의 색깔이 더 붉은빛을 띠고, 장미 정물화는 후대로 갈수록 더 농염하고 자유분방해진다. 1910년대 말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분홍색 장미 그림 역시 초기에 화병에 담겨 있는 정물화에서 벗어나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후기의 자유로운 꽃다발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다. 더구나 한 편의 서정시 같은 감흥을 안겨준다. 화려한 ‘꽃’과 청량한 ‘빛’ 사이에서 빚어내는 색채의 변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년에 들어 관절염으로 인해 손발이 자유롭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열정을 쏟았던 르누아르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매일같이 장미를 그렸다.
이옥경 < 서울옥션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