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한민국에 위인이 없는 사연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66년 됐다. 우리 민족의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정말 한순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짧은 기간이지만, 대한민국이 그 기간에 정치·경제적으로 이룬 업적은 그 이전 어느 시대보다 크다.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정통성이 없는 역사의 사생아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대한민국은 누가 뭐래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이룬 성공한 나라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으며,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성공한 대한민국에는 짧은 역사지만 위대한 지도자들이 수두룩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는 위인이 없다. 여기저기 서 있는 기념비나 동상이나 돈에 그려져 있는 인물들을 봐도, 모두 수백 년 전 인물이거나 막연한 전설 속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서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에 국민적 추앙을 받는 위인이 없다. 왜 우리는 위대한 인물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없는가. 우리가 열등한 국민이기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위인을 위인으로 놓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자니 친일파니 해서 모두 나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물을 많이 갖고 있는 국민은 자기네 역사 속의 인물들을 위인으로 만들어 포장하고 지킨다. 진실이든 가공이든 자기 조상 중에 위대한 사람을 자꾸 만들고 늘려 나가야 자기들이 위대해지고, 국가 구심점이 생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생기고, 후손들이 배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단 한 시대를 마감하고 떠난 사람들은 위대하든 아니든 그 나라 역사 속의 인물이다. 후손들은 일부러라도 그들의 역사적 기여와 공로를 강조하고 그들의 과오를 감싸서 후손들에게 우리도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이득이다.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대했고 존경할 만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 건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흑인 노예를 가졌다고 해서 미국인들은 이것을 굳이 까발려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의 정치적 과오를 중국인들이 몰라서 톈안먼 광장에 초상화를 걸어 놓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면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과 그 후손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역사 속의 인물들은 바로 우리 국민의 정신적 재산이고 공공재다.

위대한 인물이라고 해서 약점과 어두운 면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역사 속의 인물,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변명할 수가 없다. 이들을 상대로 현재 사람들이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지나간 시대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과거사 정리 등의 이름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약점과 과오를 들춰내서 그들을 위인의 반열에서 끌어내려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도 역시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동류의식에 일시적 쾌감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남는 것은 역시 우리는 ‘엽전’이구나 하는 자괴감과 열등의식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외국의 위인전이나 열심히 읽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만의 역사는 아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시련도 많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성공한 국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지도자와 인물들이 나타났다.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온 것은 그들 덕분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물마저 일부러 공보다 과오를 까발려서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 자산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도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외국인에게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남의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감추는 것은 친구지간이든 역사적 인물에게든 자신의 정신건강에 이로운 일이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 kim0032@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