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제금융도시 노리는 도쿄
일본 도쿄가 국제금융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펴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뉴욕과 런던에 버금가는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게 도쿄시의 청사진이다.

가장 먼저 역점을 두기로 한 것은 도쿄프로본드 시장의 활성화다. 도쿄프로본드 시장은 도쿄증권거래소가 운영하는 기관투자가 전용 채권 시장이다. 채권 발행 절차가 간소할 뿐 아니라 영어로 공시를 작성할 수 있다. 해외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도쿄시는 내년 초 10억달러(약 1조원) 한도의 지방채를 도쿄프로본드 시장에 상장키로 했다. 투자를 원하는 기관투자가가 나올 때마다 지방채를 발행하는 구조다. 지방채 상장을 마중물로 해외 자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도쿄시의 이런 노력에는 이유가 있다. 도쿄는 ‘자산거품’이 꺼지기 직전인 1990년대까지 미국 월가와 함께 글로벌 금융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은행과 증권사 간 높은 업무 장벽과 해외 기업이 금융거래를 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 등으로 그러지 못했다. 일본 내에선 뉴욕과 런던에 뒤처진 도쿄가 이제라도 국제금융도시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지 않으면 일본 금융시장은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한국도 해외 금융회사가 잇따라 철수하는 등 일본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느긋하다. 대표적인 게 도쿄프로본드와 비슷한 적격기관투자가(QIB) 시장이다.

일본 기업 오릭스가 최근 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가 총자산 5000억원 이상 기업은 채권을 상장할 수 없다는 제한에 걸려 발길을 돌렸다. 2012년 QIB 시장이 개설된 이후 채권을 상장한 해외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한 증권사 임원은 “총자산 제한 조건을 완화하는 등 QIB 제도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한데도 금융당국은 소극적인 모습”이라며 “개설 취지와 어긋나게 해외 기업이나 해외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데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3년 내 전 세계 금융 정상을 초청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겠다며 분주한 도쿄의 모습과 10년 이상 말로만 ‘금융허브’를 외치는 서울의 모습이 겹쳐져 씁쓸하다.

김은정 국제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