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처럼…애플 철학은 단순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 내 ‘시티 센터’ 구역의 사다리꼴 모양 강의실. 애플 직원이자 이날의 강사인 랜디 넬슨이 11장의 그림을 펼친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파블로 피카소가 1945년 제작한 석판화 연작 ‘황소’다. 이 연작에서 피카소는 황소의 세부적인 모습을 단계적으로 생략해 나갔다. 마지막 작품엔 극도로 정제된 실루엣만 남아 있다. “당신이 전달할 간명한 메시지만 남을 때까지 반복해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해 나가세요. 그것이 애플의 철학입니다.”

◆피카소와 애플 철학

피카소처럼…애플 철학은 단순화
애플형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애플의 사내 연수 과정은 특별할까. 그곳에선 무엇을 배울까.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애플 사내 연수 과정인 애플대학에서 강의를 들은 직원 3명을 취재해 이런 의문점들을 파헤쳤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2008년 애플대학을 세웠다. 임직원들에게 애플의 기업 철학과 문화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피카소는 말했다. “좋은 예술가는 베낀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잡스는 피카소의 이 말을 인용하며 직원들에게 설파했다.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것들을 접하라. 그 위대한 것들을 당신이 하는 일에 접목하라.” 베끼고 훔친 아이디어를 융합해 위대한 제품을 창조하기 위해선 먼저 배워야 한다. 잡스가 애플대학을 세운 이유다.

잡스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 예로 애플의 전문가용 PC인 매킨토시를 들었다. 그는 “매킨토시가 위대한 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 기획자 중에 음악가 시인 예술가 동물학자 역사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훌륭한 컴퓨터공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다른 배경지식이 융합해 위대한 제품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베일에 싸인 애플 대학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플 본사.
애플대학은 베일에 싸여 있다. 애플이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강의실 사진은 물론 강사 인터뷰도 공개된 적이 없다. NYT는 익명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애플 직원들을 취재했다. 이들에 따르면 애플대학은 애플 제품과 마찬가지로 매우 치밀하게 설계됐다. 한 수강생은 “심지어 화장실에 놓인 화장지마저 정말 멋있다”고 전했다.

연수 과정은 2008년 조엘 포돌니 당시 예일대 경영대학원장이 처음 만들었다. 그는 현재 애플 부사장으로 애플대학의 운영 책임을 맡고 있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애플은 연수 과정을 외주하지 않는다. 애플이 고용한 강사 작가 편집자들이 내부에서 직접 기획, 설계해 제공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예일 하버드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스탠퍼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명문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원래 재직하던 학교에서 겸임 직위를 유지하기도 한다. 교육은 연중무휴로 상시 제공한다. 연수를 받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이 자발적으로 듣는다. 내용이 좋아서다.

◆애플형 인재, 무엇을 배우나

애플대학은 수강자의 직위와 배경에 따라 맞춤형 연수 과정을 제공한다. 최근 애플이 인수한 기업 직원들을 위한 강의를 따로 개설하기도 한다. 일부 강의에선 애플이 내린 경영 결정을 사례로 교육한다. 아이팟과 아이튠즈를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OS) 윈도와 호환하기로 한 결정 등이 그 예다. 잡스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담당 임원이 잡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아이튠즈 생태계가 크게 확대돼 아이폰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넬슨은 ‘애플을 애플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강의에서 버튼이 78개 달린 구글 TV 리모컨과 단 3개만 있는 애플 TV 리모컨을 비교하기도 했다. 애플 제품 철학인 간결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