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의 공식 학명인 캡시컴(Capsicum)은 고추를 뜻하는 그리스어 ‘Kapto’에서 유래했다. 영어로는 단고추(sweet pepper), 종고추(bell pepper)라고 한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권에서는 파프리카(paprika), 프랑스에서는 피망(piment)이라고 부른다. 모두 고추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둘을 달리 인식한다. 피망을 개량한 종묘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작물인 양 네덜란드식 이름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프랑스에서 온 피망과 네덜란드에서 온 개량종을 차별화한 것이다. 개량 정도에 따라 굳이 나누자면 매운맛이 살짝 나고 육질이 질긴 것은 피망, 단맛이 많고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건 파프리카다. 피망은 빨강과 녹색 두 종류, 파프리카는 빨강 노랑 오렌지색 녹색의 네 종류가 있다.
파프리카의 또 다른 이름은 ‘비타민의 왕’이다. 100g당 비타민C 함량이 375㎎으로 과일·채소류 중 1위다. 피망의 2배, 키위·딸기의 4배, 시금치의 5배다. 비타민C는 녹색보다 붉은색에 2배, 주황색에 3배 더 많이 들어 있다. 주황색에는 면역력을 높이는 베타카로틴도 풍부해 감기예방, 피부미용,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한다. 빨간색에는 발암 억제 효과가 있는 캡산틴이 많아 성장 촉진, 면역력 증가, 노화 방지, 숙취 해소에 도움을 준다. 노란색에는 눈 건강을 돕는 루테인, 녹색엔 빈혈을 예방하는 철분이 많다.
한때는 수출만 했다. 지금도 수출물량의 99%는 일본으로 간다. 요즘은 국내 소비가 급증해 내수에 집중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파프리카 소비는 2011년 양파·감자·고구마에 이어 4위였으나 지난해 2위까지 올랐고 이달 들어서는 1위 자리를 꿰찼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국민채소의 씨앗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가격이 순금보다 비싸니 ‘황금씨앗’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늦었지만 정부가 종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조원을 쏟아붓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