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자 슬쩍 물었다. “대통령보다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뭔가요.” 키신저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 “미국인은 말 위에 앉아 마차 행렬을 이끄는 카우보이를 좋아합니다.”

평소 키신저는 자신이 항상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그러나 팔라치에게 말려든 키신저는 베트남전쟁이 쓸데없는 전쟁이라는 사실을 자백하고 말았다. 이 인터뷰로 인해 그는 정치가로서의 경력을 포기하고 말았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학자 철학자 저널리스트 정치인으로서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막아서는 저항을 극복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마리 퀴리, 수전 손태그, 아웅산 수치, 레이첼 카슨 등 스타일도 국적도 다른 22명은 획일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망설임 없이 잡은 사람들이다.

체첸에서 일어난 잔학한 만행을 고발한 안나 폴릿콥스카야, 만화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바로잡은 마르잔 사트라피는 활발한 사회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 아인 랜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이 사회 전면에 나서는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미 뇌터, 방사선을 발견한 마리 퀴리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 여성이 약하다는 통념을 깨고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인물들이다.

마거릿 대처, 인디라 간디, 앙겔라 메르켈은 권력에 대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동지는 물론 적에게까지 과소 평가받았던 정치인들이다. 저자는 “권력의 최고 자리에 앉은 여성 가운데 누구도 여성운동에 투신한 전력이 없다”며 “정치처럼 남성이 주도하는 분야에 진입하려면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