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교황이 준 네 가지 교훈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풍조가 도를 넘었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진다. 집단폭행으로 인한 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최근 군 면회객이 급증한 건 당연하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걱정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여기는 천국같다”는 부모와 자식만의 암호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비단 군만의 얘기가 아니다. 시끄럽게 운다고 의붓딸을 폭행해 사망하게 한 계모, 잔소리를 한다고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아들, 동료 여중생을 성매매시키고 납치해 죽인 뒤 시신을 훼손한 여중생들, 내연남을 죽인 뒤 사체를 고무통에 넣은 채 지낸 여인, 재력가를 청부살인했다는 서울시의원. 우리 사회의 광기(狂氣)에 놀랄 따름이다.

무너진 사회적 신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하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조성된 물질만능주의와 경제위기를 겪으며 심화된 사회 양극화,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이 가져온 비뚤어진 인성, ‘3포시대’로 요약되는 청년들의 불확실한 미래, 사회 약자를 포용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부재. 이뿐이겠나. 원인을 꼽는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건 사회의 신뢰 붕괴로 요약된다. 공부를 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밑바닥엔 사회의 다각적인 갈등이 자리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정서적 괴리는 심각하다. 경제민주화로 대변되는 반기업 정서, 선거 때마다 힘을 받는 무상복지 등 포퓰리즘은 이를 악용한 삼류정치의 결과물이다. 세대간 불신은 도를 넘었다. 소통 언어 자체가 다르다. 선거는 20~30대와 50대 이상의 결전장이 됐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은 교육 현장까지 황폐화시키는 지경이다. 지역 감정도 여전하다.

솔선수범과 소통으로 풀어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다. 교황의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 위로, 용서, 화해, 희망, 양보, 나눔 등으로 요약된다. 교황의 메시지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네 가지 정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교황은 의전차량으로 기아의 소형차 쏘울을 선택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땅의 힘센 자들을 향해 ‘스스로 낮추고 약자들을 배려하라’는 주문이다.

둘째는 소통의 힘이다. 바쁜 일정 중에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불통에 빠진 한국의 지도층에 소통의 힘을 보여줬다. “정치분열과 경제불평등을 소통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정치권을 향한 일침으로 들렸다. 국민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정치권은 반성하고 자기를 내려놓는 겸손과 상호존중의 대화를 통해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도전정신이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꿈을 결코 뺏기지 말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넷째는 인간존중의 문화다. 교황은 “물질주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 흐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곳곳에 쌓인 갈등의 벽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건 국민 모두의 몫이다.

이재창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