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식 없고 겸손한 교황의 삶 모두가 본받았으면"
“한 음 한 음 교황님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연주했습니다.”

‘건반위의 구도자(求道者)’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68·사진)는 지난 16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백씨는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가 고른 곡은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 중 첫 번째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리스트가 이탈리아 도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성인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자 고개를 숙인 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는 일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266명 교황 중 이 이름을 택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연주는 염수정 추기경의 권유로 성사됐다. 염 추기경은 지난 1월 추기경 서임 발표 후 백씨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이 한국을 찾을 때 연주해줬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이후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요한 23세·요한 바오로2세 시성식을 TV로 지켜본 백씨가 염 추기경에게 연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백씨는 “교황의 순수한 성품과 어울리는 곡이라서 골랐다”며 “교황과 프란치스코 성인 모두 자기 자신을 낮추며 예수의 삶을 좇은 분들”이라고 말했다. ‘요셉마리’란 세례명을 가진 백씨는 교황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교황께 뭔가를 바랄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교황을 위해서, 또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한다”며 “교황은 권위 없고 겸손한 분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본받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답했다.

백씨가 연주하는 동안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가 왼쪽에 앉아 악보를 넘겨주는 모습도 보였다. 노씨는 교황 방한을 기념해 ‘코이노니아’란 곡을 만들기도 했다. 연주가 끝난 뒤 백씨는 아내 윤정희 씨와 함께 피아노 옆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시복식을 끝까지 지켜봤다. 기념 사진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요청도 흔쾌히 들어줬다.

백씨는 “제가 오늘 한 일은 작지만 음악의 핵심은 화음인 만큼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데 제 연주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