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모은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제작 과정과 성공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모은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제작 과정과 성공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덤덤합니다. 느낌이 늦게 오는 편이어서 나중에 ‘그랬구나’ 하겠지요. 감독으로서 갖는 체질적인 시간차라고 할까요, 현장에서 어떤 일이 긴박하게 벌어지면 냉철하게 대처하다 보니 지금은 일단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죠.”

지난 17일까지 누적 관객 수 1462만명을 기록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500만명 돌파시대를 열게 된 ‘명량’의 연출자 겸 제작자인 김한민 감독(45)은 흥행 소감을 이렇게 얘기했다. 김 감독은 “영화가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다는 기사가 계속 났지만, ‘이게 내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한국 영화사를 새로 쓴 김 감독을 만났다.

“영화가 국민이 원하는 뇌관을 건드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흥행 요인에 대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갈구라고 많이 보도됐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영화적인 재미와 함께 표현된 거죠. 저는 이순신 장군을 고답적이거나 화석화된 인물이 되지 않게 그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명량대첩이 이순신 장군이 민초들과 함께 이룬 결실이라고 보고 기획을 시작했는데, 이순신 장군이 지닌 힘을 한참 뒤에 깨달았고, 자신이 느꼈던 울림을 관객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민초들과 힘을 합쳐 뭔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진부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순신 장군은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남북 간,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거지요. 이순신 장군은 이런 정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가 그동안 세 번 제작됐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한 것은 성웅 이순신의 전기로만 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명량’이 젊은이뿐 아니라 중·장년층에도 호소력을 발휘한 것에 대해 그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에다 스펙터클한 전쟁 신이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산’과 ‘노량’ 등 3부작으로 기획했지만 ‘명량’을 먼저 만든 이유는 가장 극적인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버티면서 승리로 이끈 명량해전은 오늘 한국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명량 근처에서 발생했을 때,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오히려 이 영화가 힘을 줄 것이라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극복의 이야기이니까요.”

김 감독은 이번에 제작까지 맡아 연출료 외에 흥행 수익의 40%인 100억원 안팎을 벌게 됐다.

“제작사를 만든 이유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러 개 있는데, 투자자들과 ‘엣지’있게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과 바로 시나리오 방향과 기획을 얘기하고, 예산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연출에만 집중하는 성향의 감독도 있지만 저는 예산을 알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생각합니다.”

그는 ‘한산’의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했다. 조선 수군이 왜선을 기습하고, 거북선이 등장하는 해전은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만간 투자사들과 제작 논의를 할 생각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김 감독은 2007년 미스터리 사극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해 스릴러 ‘핸드폰’(2009)과 액션 사극 ‘최종병기 활’(2011)을 연출했다. 사극을 많이 하는 이유를 물었다. “역사는 선조들의 발자취이지만 현재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인물들이 생동감 넘치고, 교훈도 얻을 수 있지요.”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