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일 열릴 예정이던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또 연기했다. 내실 있는 콘텐츠 준비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이다. 하지만 단순한 준비 부족이 아니라 규제개혁 성과가 지지부진한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3월20일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당시 정부가 풀겠다고 한 규제 중 상당수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 부처 장관과 기업인 등 160명이 참석해 장장 7시간 동안 이른바 끝장토론을 벌였지만 정작 국민 앞에 성과로 내놓을 만한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규제의 먹이사슬 생태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징후는 1차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미 곳곳에서 감지됐다. 지난 6월 국무조정실이 국무회의에 보고했던 규제개혁 추진상황 및 향후계획을 보면 1차 회의 후 규제신문고를 통해 5262건의 규제민원이 쏟아졌지만 수용된 건 94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용되지 않거나 미뤄졌다. 더구나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각 부처는 기다렸다는 듯 안전을 빌미로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바빴다. 이뿐이 아니다. 규제개혁장관회의 현장에서 제안된 것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중소기업들이 그토록 호소했던 중복인증 문제가 개선됐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푸드 트럭도 유원지 내에서만 합법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부분적 완화로 끝나는 분위기다. 공인인증서 대체수단 마련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대통령까지 현장에서는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질타했을 정도다. 이러니 청와대로서도 국민 앞에서 또다시 끝장토론을 하겠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규제개혁장관회의 연기가 철저한 이행상황 점검을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옳은 방향이다. 정부가 풀겠다고 약속한 규제조차 상당수 해결 못 한 마당에 새로운 규제완화를 떠들어본들 국민이 믿어줄 리 없다. 철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