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동부그룹 제조유통부문 회장 (74)이 10년여 전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장관으로 재직할 무렵 기자간담회 석상에서 우스갯소리를 약간 섞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대박 의약품’이 아마도 대머리 치료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약을 개발한다면 노벨상 (생리의학상)은 떼어 놓은 당상일 거다.”

그의 언급은 전 세계적으로 머리카락이 적거나 없어 고민하는 ‘환자’가 상상을 초월한다 (시장성이 크다)는 것을 지적한 거였는데요. 당시 의학계에서는 1999년 개발된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가 크게 부상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탈모증은 개인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질환으로 불립니다. 실제 기자도 젊은 시절 한 때 이런 경험을 해봐 그 아픔의 강도를 짐작하는데요. 1980년대 초반 군복무 (‘차트작성’ 등 서무행정병) 시절,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증에 걸려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처음 옆머리에서 발견된 동전 같이 생긴 탈모현상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전 부분으로 확산해 머리숱이 ‘시쳇말로’ 절반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는 형편이 됐습니다. 외출을 나가 통원 치료를 받을 때 탈모부위에 주사 (한번 치료에 수십번)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성분의 약을 투입하는데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 질환은 (스트레스 강도가 낮아지는 시기인) 고참이 되면서 서서히 낫기 시작하더니 제대 몇 달 뒤 완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정신적 안정’이 원형탈모증의 치료제라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어제 8월 19일 원형 탈모증상 치료와 관련한 외신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관련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 ‘대박’ ‘노벨상감’ 같은 키워드도 등장했고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골자는 “젊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원형탈모를 완치할 수 있는 약이 발견됐다”입니다. 미국 칼럼비아대학 메디컬센터의 라파엘 클라인스 박사가 연구의 주체입니다.

연구팀은 골수암의 일종인 골수섬유증 myelofibrosis 치료제로 미국식품의약국 FDA로 부터 승인받은 ‘룩솔리티니브 ruxolitinib’가 원형탈모의 치료에도 특효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얘긴데요. 이 알약을 원형탈모 환자 3명에 게 하루 두 차례씩 먹게 한 결과, 머리가 다시 자라면서 4~5개월만에 탈모가 완치됐다는 겁니다. [영국 의학전문지 ‘네이처 메디신 Nature Medicine’ 온라인판 게재]

클라인스 박사에 따르면 (기자가 걸린 뒤 30년 후에 파악한 사실인) 원형탈모증은 자가면역질환으로 15 ~ 29세의 젊은이에게 잦다고 하네요. 증세는 두피의 한두 곳에서 원형 또는 타원형의 형태로 탈모가 나타나거나 머리카락 전체가 빠지는 현상으로 정의되고요.

이의 원인은 인체 면역체계가 모낭을 공격해 발생한다는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원형탈모증은 (제 경우처럼) 머리가 빠졌다가 다시 회복되기도 하지만 영구히 대머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고요. 까닭에 저의 경우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클라인스 박사는 이처럼 원형탈모가 면역세포인 T세포가 모낭을 공격해 발생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T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약을 모델 쥐에 실험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모두 빠진 털이 자라는 놀라운 효과가 나타나 이 가운데 룩소리티니브를 골라 원형탈모 환자에게 이번에 직접 실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룩솔리티니브의 효과에 대해선 앞으로 진행할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는 현재의 상태로 볼 때 원형탈모 환자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룩솔리티니브가 차후 원형탈모제 치료제로 확인될 경우 ‘비아그라’와 같은 ‘재창출신약’ [드러그 리포지셔닝 Drug Repositioning]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비아그라는 당초 1990년대 초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다가 1997년 임상실험 과정에서 남성 발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발기부전치료제로 FDA의 승인을 받았지요.

클라인스 박사는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남성 탈모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관련 있기 때문에 원형탈모와는 완전히 다른 질환이며 따라서 이 약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실망스럽게 느낄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