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에서 '니'까지…노랫속 연인 호칭 탐험
“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 사람/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1978년 발표된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의 가사 일부분이다. 한때 사랑했던 상대방을 ‘그 사람’이란 3인칭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 가사는 올 상반기 최대 인기곡이었던 소유&정기고의 노래 ‘썸’의 일부다. 상대방을 뜻하는 단어로 ‘니’를 쓰고 있다.

○2000년대 가사 속 ‘니’ 부쩍 늘어

'님'에서 '니'까지…노랫속 연인 호칭 탐험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공인 가온차트의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1960년대에는 가요에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람’과 ‘님’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19일 말했다. 멜론의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인기곡 250곡을 텍스트 마이닝 기법(방대한 양의 정보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분석 방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다.

1970년대에는 ‘그대’의 사용 빈도가 높았고 1980년대 들어선 ‘그대’와 더불어 ‘당신’이 새롭게 등장했다. 1990년대부터는 ‘너’란 단어가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라섰다. 2000년대 이후 ‘너’의 구어체 표현인 ‘니’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올해 들어선 ‘니’를 쓴 노래가 더 많아졌다. 김 위원이 올 상반기 가온차트에서 주간 1위를 차지했던 22곡의 가요를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13곡의 노래에서 ‘니’라는 표현을 썼다.(‘네’로 표기하고 ‘니’로 부른 경우 포함) 소유&정기고의 ‘썸’은 물론 소녀시대 ‘미스터 미스터’(미랠 여는 열쇠 바로 니가 가진 걸), 2NE1 ‘컴 백 홈’(아무 대답 없는 니가 너무 밉지만) 등에서 이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비자 즉각 반응 위한 자극적 가사

‘니’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대’나 ‘사람’, 심지어 ‘너’보다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과거 세대보다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현 세대의 정서가 노래 가사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음악 감상 형태가 ‘소장’에서 ‘소비’로 바뀐 것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예전에는 음반을 구입하면 두고두고 듣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새는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원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즉각적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가사가 등장하게 됐다는 것.

김 위원은 “이른바 ‘머니코드(C-G-Am-F)’라 불리는 코드 진행을 많은 히트곡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기곡 가사도 ‘니’라는 인칭대명사와 직설적·자극적 표현을 획일적으로 쓰는 것 같다”며 “음미할 수 있는 가사가 우리 음악시장에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