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왜 혁명은 자유보다 독재를 만들어낼까?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앤드루 마는 BBC 방송과 함께 8부작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세계 60여곳을 방문하고 2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축적한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 세계사 입문서 《세계의 역사》는 원시 사회부터 2008년 미국 경제위기 이후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91개의 역사적 순간을 담은 책이다.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구 중심 서술에서 벗어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까지 조명한다. 마야에서 몽골로, 로마 제국에서 진나라로, 카리브해에서 우크라이나로 쉴 새 없이 여행한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자료를 조사했던 만큼 책에서도 역사의 주인공과 행동을 재연하듯 묘사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한 권에 담으려면 자칫 이야기가 짧고 피상적 묘사에 그칠 수 있다. 대신 저자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흥미를 높였다. 정치평론가답게 세력과 정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이 역학관계를 조망하는 정치 프레임은 계속 반복되며 유효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며 지배자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왜 혁명이 자유보다 독재를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는지,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하게 됐는지는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단서다.

서양의 역사는 여러모로 동양보다 앞섰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도 간단하게 일침을 놓는다. “유럽인들이 종이를 처음 봤을 때 중국인들은 종이로 만든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거나 “독일과 이탈리아가 살인극을 벌이고 있을 때 캄보디아의 크메르 문명은 앙코르와트를 건설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서양사보다 다양한 문명의 역사를 다뤘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 여러 역사적 순간을 다뤘기에 세계사의 흐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어지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다뤄진 역사도 불균형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지만 “단절을 끊어내는 약진의 순간이 책에서 말하려는 역사의 요점”이라고 설명한다. 딱딱한 역사 개론서라기보다 타임머신 기능을 탑재한 역사 여행서로 읽는 재미가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