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서원 옛터에서 발굴된 금강령. 연합뉴스
서울 도봉서원 옛터에서 발굴된 금강령. 연합뉴스
서울 도봉서원이 있던 자리에서 고려시대 불교의식이나 공양에 사용한 금강령·금강저·향로·발우 등 국보·보물급을 포함한 66건 77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문화재청과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2012년 도봉서원터 발굴조사 도중 찾아낸 불교용구를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했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도봉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2012년 5월부터 5개월간 발굴조사를 한 결과 서원이 조선 초기까지 존재했던 영국사라는 절을 허물고 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영국사를 지을 때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묻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했다.

유물은 밀교 의식에서 중요한 법구(法具)들로 무기 모양을 한 금동제 금강저와 방울이 달린 요령인 금강령(金剛鈴) 등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향로가 발굴됐다.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금강령이다. 금강령에 오대명왕상과 사천왕상이 함께 배치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오대명왕은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들을 뜻하고 사천왕은 불국토를 네 방향에서 지키는 신들을 가리킨다.

이 금강령은 12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기존에 확인된 20여개의 금강령 중 조각이나 제작 수법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순천 송광사가 보관하고 있는 금동 요령이 보물(제176호)인 것을 감안하면 이 금강령의 가치는 훨씬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조사단은 이들 불교공양구가 영국사와 관련된 유물임은 확실하지만 고려시대에 존재한 것으로 확인된 인근 도봉사(道峰寺)라는 사찰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함께 발견된 청동제기에서 ‘도봉사’라고 새긴 글자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발굴단 관계자는 “불교에선 절에 위협이 가해지는 일이 있어도 법구들을 숨기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절에서 숨겨둔 것이 아니라 영국사를 지을 무렵 도봉사에서 제의를 위해 갖고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 유물은 조사 보고를 마친 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으로 보관 장소가 정해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원에서 출토됐지만 불교용구인 점을 감안해 불교계가 보관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