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기·벤처 육성으로 투자 물꼬 터야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 ‘투자 부진’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무슨 새삼스러운 이야기냐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한국의 투자는 부진하지 않다는 것이 다수 경제학자의 생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투자율이 떨어진 것은 위기 전의 ‘과잉 투자’가 조정된 결과라고 본다. 실제로 총 투자율은 아직 30% 가까이 돼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이 견해가 맞는지는 위기 후 생산성 증가율이 올라갔는지에 달려 있다. 그랬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반면 ‘투자 증가율’은 분명히 떨어졌다. 국내 총자본형성 증가율은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6년간 2.2%로, 위기 전 16년간 11.6%에 비해 현저히 낮다. 투자 증가율 2.2%는 너무 낮다. 그것은 일자리 문제를 일으킨다.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는 경향은 위기 후에도 계속됐기 때문에 투자 증가율이 2.2%면 신규 고용 노동시간 증가율은 마이너스가 아니면 다행이다. 투자가 일자리를 못 늘린다면 부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후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과 금융 시스템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위기 전 대기업의 ‘과다 차입에 의한 과잉 투자’는 위기 후 개혁으로 해소됐다. 그러나 그것을 대체할 메커니즘은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투자 주체는 중소·벤처기업이어야 하지만, 돈이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대신 늘어난 것은 부동산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이다.

이런 점에서 투자 부진을 해결하는 것은 중소기업 육성이다. 가계가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에 돈이 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융회사에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고, 그렇게 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 이전 규제개혁회의에서 나온 ‘벤처인증제도 간편화’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자라 올라가는 사다리를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투자 문제의 또 하나 핵심은 서비스산업 육성이다. 한국의 새 성장동력이 서비스산업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비스산업 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다. 이런 이유로 서비스산업의 규제가 새롭게 문제시돼 왔다.

서비스산업 규제의 어려움은 의료, 교육, 환경, 안전 등 사회 문제와 결부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료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우는 정책은 의료 민영화를 가져와 서민의 의료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안전이 중요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 서비스산업 육성의 또 하나 어려움은 ‘사회적 강자’의 이해가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규제 개혁으로 진입장벽을 허물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득권을 건드린다. 전관예우와 ‘치외법권’으로 얽힌 법조 서비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새 경제팀이 투자 부진 문제 해결에 나선 모습이다. 일단 긍정적이다. 추진력이 강하기 때문에 말만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면도 있다. 중소기업 문제는 당연히 추진과제 속에 들어 있지만, 좀 더 구조적 문제를 살펴야 할 것 같다.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해 가계대출을 늘리는 것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까. 서비스산업 규제가 사회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한 단계 높은 안을 제시하는 것이 요체다.

제대로 된 규제 개혁을 위해서는 사회적 강자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을 하지 못하고 논란 속의 한쪽 안을 그대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추진력이 아니다. 국회가 하는 짓이 형편없더라도 혹시 민주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다.

투자 부진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온갖 제약 아래에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선진국 수가 많지 않은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