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맨발 외교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는 작은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이 있다. 영국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윌리엄 영국 왕세손,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 세계적 인사들이 휴양지 등으로 자주 찾는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다.

2007년 9월,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투표권을 가진 나라를 상대로 정부에서 각국 외무장관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중 세이셸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세이셸 외무장관은 13개국으로 구성된 남아프리카경제연맹 사무총장이었다. 한국과 모로코가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의 표를 얻기 위해 세이셸은 꼭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마라톤으로 인연을 맺고 있던 세이셸 주한 명예총영사에게 외무장관을 계족산으로 모시자고 제안했다. 계속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외무장관의 방문에 맞춰 그치고 운무까지 깔려 운치를 더했다. 빗물을 받아 마신 황토는 적당히 물기를 머금어 걷기도 좋았다.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외무장관은 연신 ‘릴랙스’를 외쳤다. 전날 긴 비행을 하고 온 장관은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맨발 걷기가 주는 효과를 몸으로 느끼며 “한국이 이렇게 친환경적인 나라인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세이셸을 방문하게 됐다. 세이셸 국민의 비만율이 높아진다는 정부 측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세이셸에서 마라톤대회를 열기로 했다. 2008년 ‘제1회 에코힐링 세이셸 국제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행사도 함께 열었다.

이듬해인 2009년 제임스 미셸 세이셸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공식 일정으로 대전 계족산을 방문했다. 대통령을 모시는 일이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계족산까지 대통령을 모신 나는 말했다. “대통령 각하, 신발을 벗어주십시오.”

처음에는 화가 난 듯한 대통령의 얼굴이 황톳길을 걸으며 점점 풀렸다. 가을 경치도 너무 아름다웠다. 맨발도장을 찍고 차 한잔 나누면서 산속에서 오카리나 연주회를 보고 난 대통령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돌아오는 내내 대통령은 맨발체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감사의 뜻으로 세계적인 희귀종 알다브라 육지거북 한 쌍을 대전에 선물했다. 나는 세이셸에 한국을 알리고 두 나라의 관계를 밀접하게 다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내 나름의 방법인 에코힐링을 통한 ‘맨발 외교’다.

조웅래 < 맥키스 회장 wrcho@themacki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