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제습기 1위 위닉스 윤희종 회장 "삼성에 납품하게 되니 누가 물어요, '빽'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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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좋고 납기일 맞추고 가격 경쟁력 있는 게 회장님 '빽'보다 더 좋지요"
30년 공든 탑 쌓은 '히든 챔피언'…성수동 가내수공업 단지서 창업
냉각기·열교환기로 발 넓히며 성장…협력업체로는 첫 삼성인賞 받아
오늘도 생산현장으로…해외서 늦게 귀국해도 공장 찾아
보고 듣고 냄새까지 맡으며 둘러봐…"이젠 위험한 건 금세 보입니다"
30년 공든 탑 쌓은 '히든 챔피언'…성수동 가내수공업 단지서 창업
냉각기·열교환기로 발 넓히며 성장…협력업체로는 첫 삼성인賞 받아
오늘도 생산현장으로…해외서 늦게 귀국해도 공장 찾아
보고 듣고 냄새까지 맡으며 둘러봐…"이젠 위험한 건 금세 보입니다"
윤희종 위닉스 회장(67)은 제습기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7년부터 제품 판매를 시작해 연 100만대가 넘는 시장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코웨이 등 대기업들이 즐비한 제습기 시장에서 윤 회장의 위닉스는 40%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다. 제습기 하나로 생활가전 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위닉스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대박’을 친 깜짝 스타가 아니다. 냉장고 등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만으로 연간 1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히든 챔피언’이다. 윤 회장은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작업현장에서 뒹굴며 위닉스를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공장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냄새만 맡아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할 만큼 현장을 중시하는 기업인이다.
그를 만난 것은 늦은 장마가 한창때였던 지난달 22일이었다. 경기 성남 분당구 운정동에 있는 생선구이 전문점 ‘채운’에서였다. 윤 회장 사무실이 있는 위닉스 고객만족센터 맞은편에 있는 식당이다.
◆“동생 공부시키려고 창업”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은 윤 회장은 “평소에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지만 외부 손님과 만날 때는 이곳을 종종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집은 생선구이도 좋지만 사실 나물이 제일 맛있습니다. 옛날 고향에서 먹던 맛과 비슷합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습기가 많아져 제습기 판매가 늘어나겠다는 덕담에 그는 “마른장마 탓인지 올해 제습기 판매량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8월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제습기는 불쾌지수가 높은 후텁지근하고 습한 날이 많아야 판매가 늘어난다. 비가 와야 장사가 되는 우산장수의 심정이 엿보였다.
날씨 얘기를 하던 도중 밑반찬이 나왔다. 윤 회장이 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나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토란대를 들깨 소스에 무친 것이었다. 부지깽이, 뽕잎, 취나물 등 나물도 함께 나왔다. 호박전을 먹어 보니 달달해서 입에 착 감겼다. 충북 제천에서 재배한 늙은 호박을 재료로 썼다고 음식점 사장이 설명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제습기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묻자 윤 회장은 “얘기가 길어요”라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사연이 길다는 얘기였다. 사실 윤 회장은 말을 잘하는 달변 스타일도 아니었다. 약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잠깐 지나갔다. 기자가 말을 돌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가족 얘기부터 꺼냈다.
“7남매 가운데 저는 맏이였습니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았습니다. 영남대 전자공학과 합격장을 받았는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어요. 동생들을 공부시키려면 공장에 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마포에서 3~4년간 일하며 기술을 익힌 뒤 성수동 가내수공업 단지에 작은 공장(유신기업사)을 냈습니다.1973년이었습니다. 간판도 내걸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고 작은 공장이었지만 내 사업을 한다는 느낌에 뿌듯했습니다.”
메인요리인 생선구이가 상에 올라왔다. 피자 굽는 화덕처럼 생긴 곳에서 600도 불에 3분간 구워냈다고 한다. 고등어, 조기 등 바짝 구워진 생선과 함께 돌솥밥도 나왔다. 밥을 그릇에 덜어내고 돌솥에 물을 채운 뒤 생선구이 맛을 봤다. “김 간장에 찍어 먹어 보세요.” 윤 회장이 거들었다. 고소하면서 새콤한 양념이 생선살의 비린내를 잡아줬다.
“처음에는 밥솥에 들어가는 내솥을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수입했던 것을 국산화하는 것이 첨단 사업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벤처기업이었죠. 일본 코끼리밥솥보다 우리 것이 더 좋다고 자부했습니다.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만들어 꽤 튼튼했거든요.”
이 회장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이쿠, 제가 술을 안 시켰네요. 원체 술을 못해서…. 그래도 맥주 한잔은 마실 수 있으니 한잔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맥주 몇 병을 주문했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외환위기 때 제습기 사업
윤 회장은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탓인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물을 주로 먹었고 밥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컴프레서(공기압축기)를 만들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당시 냉장고가 많이 팔릴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어떤 부품을 만들까 생각하다가 자기들(대기업)이 직접 만드는 부품 다음으로 비싼 것이 무엇인지 찾았습니다. 냉각기로 쓰이는 컴프레서가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것을 국산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냉각기를 납품하다 보니 냉온수기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위닉스는 1977년 삼성전자의 협력사로 등록된 뒤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협력사 기업인으로는 제가 처음으로 삼성그룹에서 주는 삼성인상을 받았습니다. 남들은 ‘술도 못하면서 어떻게 삼성과 거래하게 됐느냐’고 물어보던 때였습니다. 삼성에 ‘빽’이 있냐고. 당시는 술을 못 마시면 새로운 거래를 트기가 힘든 때였거든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품질이 좋고, 납기일을 제때 맞춰주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게 회장님 ‘빽’보다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윤 회장은 제습기 시장에 뛰어든 얘기를 드디어 시작했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수출시장을 겨냥해 제습기를 생산했는데, 외환위기가 닥치자 적자사업을 정리하라는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제습기 제조라인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거죠. 당시 위닉스는 부품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제습기 사업을 인수하게 된 겁니다. 제습기의 핵심 부품인 열교환기 제조는 이미 하고 있었고요.”
윤 회장은 처음에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미국 대형 유통사인 시어스의 자체 브랜드 ‘켄모어’ 상표로 팔리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제주와 해안지방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제습기가 팔리기 시작했다. 2011년 홈쇼핑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 위닉스는 이듬해인 2012년 25만대, 지난해 60만대의 제습기를 팔았다.
◆“새 시도 계속하겠다”
그는 요즘도 생산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장을 돌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장을 왔다 갔다 하면 그건 구경하는 겁니다. 저는 늘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습니다. 이렇게 공장을 한 바퀴 돌면 최소한의 안전사고는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 돌다 보면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금세 보입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귀국 시간이 아무리 늦더라도 공장에 가 돌아보고 와야 안심이 됩니다.”
위닉스는 최근 제습기 판매 및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던 위니맥스와 합병했다. 위니맥스는 윤 회장의 아들인 철민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이번 합병으로 철민씨는 위닉스 2대 주주(지분율 21.42%)가 됐다. 최대주주는 윤 회장( 33.35%)이다.
윤 회장은 위닉스의 제품판매 부문을 아들에게 맡긴 것이 상속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위니맥스는 유통과 마케팅을 하는 회사인데 2002년 설립했습니다. 그때는 위닉스의 제습기 매출이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마케팅을 배우면 혼자 먹고 살 수는 있겠다’ 싶어 아들이 2002년 위니맥스를 설립할 때 보증을 서줬습니다. 돈은 안 줬어요. 회사를 물려줄 생각도 없었습니다. 중소기업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위닉스 제습기 매출이 늘어난 것도 위니맥스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잘한 영향이 큽니다. 요즘 얘기하는 ‘물량 몰아주기’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윤 회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봤습니다. 제습기에서 나오는 물을 정수해 마실 수 있게 하는 제품을 10년 전쯤 만들었습니다. 거의 안 팔렸습니다. 시도는 좋았는데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제 전공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기술을 응용해 세상에 도움되는 제품을 계속 내놓겠습니다.”
화성에 신규 라인 수출 확대 '시동'
위닉스의 경기 시화공장은 12초에 한 대씩 제습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작년까지는 국내 물량을 대기도 바빠 해외 바이어가 구매하겠다고 요청해도 대응하기 어려웠는데, 올해부터는 물량이 남아 수출을 늘려갈 계획이다. 경기 화성에 신규 라인을 깔아 제습기뿐만 아니라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제품의 수출기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희종 회장의 단골집 채운 화덕서 참나무로 구운 생선…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워
위닉스 판교 영업사무소 가까이에 있는 경기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생선구이집 채운은 섭씨 600도의 참나무 화덕에서 3분 동안 구워 비린 맛이 없고 겉은 바삭하며 속은 부드러운 생선구이가 일품이다.
2년 가까이 식초와 간장을 발효해 만든 ‘김 장아찌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간고등어구이 정식 1만2000원, 조기구이 정식 1만2000원, 갈치구이 정식 1만4000원, 코다리구이 정식 1만4000원.
산지에서 공수해오는 각종 나물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전남 고흥에서 위탁 재배하는 부지깽이, 뽕잎나물을 한 접시에, 토란줄기와 계절마다 바뀌는 파란나물을 한 접시에 각각 담는다. 파란나물은 주로 취나물이나 곤드레나물을 쓴다.
돌솥밥에 기본 반찬으로 간장게장, 더덕·총각무 얼갈이 등이 나온다. (031)781-7999 안재광/추가영 기자 ahnjk@hankyung.com
하지만 위닉스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대박’을 친 깜짝 스타가 아니다. 냉장고 등에 들어가는 열교환기만으로 연간 1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히든 챔피언’이다. 윤 회장은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작업현장에서 뒹굴며 위닉스를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공장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냄새만 맡아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할 만큼 현장을 중시하는 기업인이다.
그를 만난 것은 늦은 장마가 한창때였던 지난달 22일이었다. 경기 성남 분당구 운정동에 있는 생선구이 전문점 ‘채운’에서였다. 윤 회장 사무실이 있는 위닉스 고객만족센터 맞은편에 있는 식당이다.
◆“동생 공부시키려고 창업”
기자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은 윤 회장은 “평소에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지만 외부 손님과 만날 때는 이곳을 종종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집은 생선구이도 좋지만 사실 나물이 제일 맛있습니다. 옛날 고향에서 먹던 맛과 비슷합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습기가 많아져 제습기 판매가 늘어나겠다는 덕담에 그는 “마른장마 탓인지 올해 제습기 판매량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8월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제습기는 불쾌지수가 높은 후텁지근하고 습한 날이 많아야 판매가 늘어난다. 비가 와야 장사가 되는 우산장수의 심정이 엿보였다.
날씨 얘기를 하던 도중 밑반찬이 나왔다. 윤 회장이 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나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토란대를 들깨 소스에 무친 것이었다. 부지깽이, 뽕잎, 취나물 등 나물도 함께 나왔다. 호박전을 먹어 보니 달달해서 입에 착 감겼다. 충북 제천에서 재배한 늙은 호박을 재료로 썼다고 음식점 사장이 설명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제습기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묻자 윤 회장은 “얘기가 길어요”라며 즉답을 하지 않았다. 사연이 길다는 얘기였다. 사실 윤 회장은 말을 잘하는 달변 스타일도 아니었다. 약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잠깐 지나갔다. 기자가 말을 돌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가족 얘기부터 꺼냈다.
“7남매 가운데 저는 맏이였습니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았습니다. 영남대 전자공학과 합격장을 받았는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어요. 동생들을 공부시키려면 공장에 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마포에서 3~4년간 일하며 기술을 익힌 뒤 성수동 가내수공업 단지에 작은 공장(유신기업사)을 냈습니다.1973년이었습니다. 간판도 내걸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고 작은 공장이었지만 내 사업을 한다는 느낌에 뿌듯했습니다.”
메인요리인 생선구이가 상에 올라왔다. 피자 굽는 화덕처럼 생긴 곳에서 600도 불에 3분간 구워냈다고 한다. 고등어, 조기 등 바짝 구워진 생선과 함께 돌솥밥도 나왔다. 밥을 그릇에 덜어내고 돌솥에 물을 채운 뒤 생선구이 맛을 봤다. “김 간장에 찍어 먹어 보세요.” 윤 회장이 거들었다. 고소하면서 새콤한 양념이 생선살의 비린내를 잡아줬다.
“처음에는 밥솥에 들어가는 내솥을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수입했던 것을 국산화하는 것이 첨단 사업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벤처기업이었죠. 일본 코끼리밥솥보다 우리 것이 더 좋다고 자부했습니다.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만들어 꽤 튼튼했거든요.”
이 회장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이쿠, 제가 술을 안 시켰네요. 원체 술을 못해서…. 그래도 맥주 한잔은 마실 수 있으니 한잔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맥주 몇 병을 주문했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외환위기 때 제습기 사업
윤 회장은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탓인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물을 주로 먹었고 밥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컴프레서(공기압축기)를 만들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당시 냉장고가 많이 팔릴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어떤 부품을 만들까 생각하다가 자기들(대기업)이 직접 만드는 부품 다음으로 비싼 것이 무엇인지 찾았습니다. 냉각기로 쓰이는 컴프레서가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것을 국산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냉각기를 납품하다 보니 냉온수기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위닉스는 1977년 삼성전자의 협력사로 등록된 뒤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협력사 기업인으로는 제가 처음으로 삼성그룹에서 주는 삼성인상을 받았습니다. 남들은 ‘술도 못하면서 어떻게 삼성과 거래하게 됐느냐’고 물어보던 때였습니다. 삼성에 ‘빽’이 있냐고. 당시는 술을 못 마시면 새로운 거래를 트기가 힘든 때였거든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품질이 좋고, 납기일을 제때 맞춰주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게 회장님 ‘빽’보다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윤 회장은 제습기 시장에 뛰어든 얘기를 드디어 시작했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수출시장을 겨냥해 제습기를 생산했는데, 외환위기가 닥치자 적자사업을 정리하라는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제습기 제조라인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거죠. 당시 위닉스는 부품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제습기 사업을 인수하게 된 겁니다. 제습기의 핵심 부품인 열교환기 제조는 이미 하고 있었고요.”
윤 회장은 처음에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미국 대형 유통사인 시어스의 자체 브랜드 ‘켄모어’ 상표로 팔리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국내에서는 제주와 해안지방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제습기가 팔리기 시작했다. 2011년 홈쇼핑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 위닉스는 이듬해인 2012년 25만대, 지난해 60만대의 제습기를 팔았다.
◆“새 시도 계속하겠다”
그는 요즘도 생산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장을 돌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장을 왔다 갔다 하면 그건 구경하는 겁니다. 저는 늘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습니다. 이렇게 공장을 한 바퀴 돌면 최소한의 안전사고는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 돌다 보면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금세 보입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귀국 시간이 아무리 늦더라도 공장에 가 돌아보고 와야 안심이 됩니다.”
위닉스는 최근 제습기 판매 및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던 위니맥스와 합병했다. 위니맥스는 윤 회장의 아들인 철민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이번 합병으로 철민씨는 위닉스 2대 주주(지분율 21.42%)가 됐다. 최대주주는 윤 회장( 33.35%)이다.
윤 회장은 위닉스의 제품판매 부문을 아들에게 맡긴 것이 상속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위니맥스는 유통과 마케팅을 하는 회사인데 2002년 설립했습니다. 그때는 위닉스의 제습기 매출이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마케팅을 배우면 혼자 먹고 살 수는 있겠다’ 싶어 아들이 2002년 위니맥스를 설립할 때 보증을 서줬습니다. 돈은 안 줬어요. 회사를 물려줄 생각도 없었습니다. 중소기업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듭니까. 위닉스 제습기 매출이 늘어난 것도 위니맥스가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잘한 영향이 큽니다. 요즘 얘기하는 ‘물량 몰아주기’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윤 회장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봤습니다. 제습기에서 나오는 물을 정수해 마실 수 있게 하는 제품을 10년 전쯤 만들었습니다. 거의 안 팔렸습니다. 시도는 좋았는데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제 전공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기술을 응용해 세상에 도움되는 제품을 계속 내놓겠습니다.”
화성에 신규 라인 수출 확대 '시동'
위닉스의 경기 시화공장은 12초에 한 대씩 제습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작년까지는 국내 물량을 대기도 바빠 해외 바이어가 구매하겠다고 요청해도 대응하기 어려웠는데, 올해부터는 물량이 남아 수출을 늘려갈 계획이다. 경기 화성에 신규 라인을 깔아 제습기뿐만 아니라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제품의 수출기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윤희종 회장의 단골집 채운 화덕서 참나무로 구운 생선…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워
위닉스 판교 영업사무소 가까이에 있는 경기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생선구이집 채운은 섭씨 600도의 참나무 화덕에서 3분 동안 구워 비린 맛이 없고 겉은 바삭하며 속은 부드러운 생선구이가 일품이다.
2년 가까이 식초와 간장을 발효해 만든 ‘김 장아찌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간고등어구이 정식 1만2000원, 조기구이 정식 1만2000원, 갈치구이 정식 1만4000원, 코다리구이 정식 1만4000원.
산지에서 공수해오는 각종 나물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전남 고흥에서 위탁 재배하는 부지깽이, 뽕잎나물을 한 접시에, 토란줄기와 계절마다 바뀌는 파란나물을 한 접시에 각각 담는다. 파란나물은 주로 취나물이나 곤드레나물을 쓴다.
돌솥밥에 기본 반찬으로 간장게장, 더덕·총각무 얼갈이 등이 나온다. (031)781-7999 안재광/추가영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