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빌미로 예적금 금리를 무더기로 내리고 있다. 예적금 금리의 인하 폭은 기준금리 인하 폭보다 훨씬 큰 반면 대출금리 인하 폭은 미미한 수준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큰만족실세예금의 금리를 기존 연 2.4%에서 연 2.05%로 0.35%포인트나 내렸다. 서민들을 위한 상품인 주택청약예금과 주택청약부금도 각각 0.3%포인트 인하했다.

우리은행은 개인고객들을 위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13종과 기업고객 대상 예금 3종의 금리를 무더기로 인하해 다음달부터 적용한다. 기업AMA통장의 경우 기존 연 1.5~2.2%에서 연 0.3%로 금리를 무려 1.2~1.9%포인트나 인하한다. 우리잇통장도 기존 연 2.0%에서 0.3%로 1.7%포인트 내리는 등 대부분 상품의 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췄다.

고객 혜택도 대폭 줄여 월 20~30회의 자동이체 입출금 수수료를 면제해 주던 혜택을 월 10회로 줄여버렸다.

우리은행은 주택청약정기예금과 장기주택마련저축의 금리도 최대 0.5%포인트 인하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정기적금인 '원더풀라이프 적금'의 기본금리를 기존 연 2.3%에서 연 1.9%로 0.4%포인트나 내렸다. 예금보다 금리 수준이 높은 적금의 기본금리가 연 1%대로 떨어진 것은 이 상품이 최초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대표 수신상품인 '마이심플통장'과 `두드림통장'의 금리를 각각 0.4%포인트, 0.3%포인트 낮췄다.

우대금리와 고객 혜택을 줄이는 은행들도 잇따르고 있다.

농협은행은 '초록세상적금', `NH연금수급자정기예금' 등의 우대금리를, 기업은행은 `IBK9988나눔통장'의 우대금리를 축소했다.

신한은행은 일부 고객의 이체수수료 면제 혜택을 기존 월 30회에서 10회로 줄여버렸다.

더구나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이 일반 예적금 상품의 금리를 조만간 인하할 예정이어서 은행들의 대대적인 금리 인하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반면 대출금리 인하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시중은행 중 신한은행이 '금리안전모기지론'의 금리를 기준금리 인하 폭과 같은 0.25%포인트 인하했을 뿐이다. 나머지 은행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의 기준 금리로 이용되는 코픽스 연동 대출의 금리를 고작 0.02~0.09%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코픽스 연동 대출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가계대출 상품이다.

시중은행들은 "시장금리의 변화를 반영해 대출 및 예·적금 금리를 결정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금리의 변화를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은 채 예적금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폭보다 더 큰 폭으로 무더기 인하하고, 대출금리는 미미한 수준으로 낮춘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더구나 우대금리나 고객 혜택은 시장금리와 상관없는데도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를 빌미로 이들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은행 예·적금 금리는 '기본금리+우대금리'의 구조로 이뤄지는데, 기본금리는 시장금리를 반영하는 반면 우대금리는 은행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기준금리 인하를 핑계로 수익 극대화에 골몰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무더기로 낮춘 배경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으로 밀려드는 것을 꼽았다.

올해 1~7월에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무려 2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갈수록 주식시장 등에서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밀려든 결과다.

주택담보대출도 올해 1~7월 12조원 넘게 늘어 지난해 전체 증가액(1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예적금 금리를 높게 유지하지 않아도 자금이 밀려들고 대출마저 호조를 보이니, 은행들로서는 '배짱 영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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