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는 남부와 사뭇 다른 매력을 지녔다. 지중해와 아프리카 대륙을 마주한 남부의 분위기가 열정적이라면, 피레네산맥과 대서양의 기운을 받은 북부는 시원하고 여유롭다. 북부의 도시 중 바스크 지방의 산 세바스티안은 스페인 왕족과 귀족들이 여름을 보내던 해안도시다. 지금도 저녁이면 근사한 저택과 요트가 반짝이며 빛을 내고, 산해진미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몬테 이겔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 세바스티안의 콘차 해변 풍경. /산 세바스티안 관광안내소 제공
몬테 이겔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 세바스티안의 콘차 해변 풍경. /산 세바스티안 관광안내소 제공
조개 모양으로 펼쳐진 해안 절경

산 세바스티안 지도를 펼치면 양 끝에 푸른 산이 있고, 그 사이로 조가비 모양의 ‘콘차’ 해안이 시원하게 뻗어있다. 서쪽 산의 이름은 ‘몬테 이겔도’, 동쪽 산은 ‘몬테 우르구이’다. 케이블카로 몬테 이겔도 전망대에 오르면 산 세바스티안의 전경을 시원스레 내려다볼 수 있다. 산 입구에는 유원지가 있는데 생각보다 번잡스러워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풍경은 단숨에 실망을 탄성으로 바꿔놓았다. 짙푸른 바다 건너 해변을 따라 옛 시가지가 자리했고, 그 뒤로 먼 산자락이 병풍을 두르듯 바다를 감싸고 있다. 마치 초승달이 바다에 내려앉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장면에 다른 관광객들도 넋을 놓고 만다. 바다 한가운데 놓여 있는 푸른 섬의 이름은 ‘산타 클라라’다. 항구에서 섬까지 ‘유리 바닥 보트’도 운항하는데 바닥의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안을 따라 반대편 산 부근까지 걸어갔다. 이겔도 산 입구에서 우르구이 산은 3.4㎞ 정도 떨어져 있다. 모래사장을 천천히 걷자니 하얗게 돛을 편 요트들이 보인다. 그 이국적 풍경에 발걸음은 더 느긋해졌다. 중간쯤 이르자 해변의 명소 ‘미라마르 궁전’이 나타났다. 19세기 중반에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여름 휴가를 보내던 별장이다.
산 세바스티안 옛 시가지 모습.
산 세바스티안 옛 시가지 모습.
바스크 언어가 살아 숨쉬는 옛 시가지

각종 재료를 꼬치에 꽂은 요리 핀초스.
각종 재료를 꼬치에 꽂은 요리 핀초스.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앞을 지나 걷다 보니 어느새 우르구이 산 앞의 옛 시가지 입구에 도착했다. 시장과 광장, 지역 음식을 선보이는 음식점이 밀집한 중심지다. 상점과 갤러리에 쓰인 바스크 언어가 낯설다. ‘산 세바스티안’은 바스크 언어로 ‘도노스티아(Donostia)’라고 한다. 현지인들 앞에서 이곳 지명을 언급할 때 ‘도노스티아’라고 말하니 더 반가운 기색으로 대하는 것이 피부에 느껴진다.

중심 광장에서 뻗어나온 골목은 음식점으로 가득하다. 산 세바스티안은 세계적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본고장 음식인 핀초스(pinchos)로 유명한 미식의 도시다. 핀초스는 새우, 대구, 올리브, 가지 등 각종 재료를 꼬치에 꽂은 요리다. 바스크 언어로는 ‘pintxos’라고 표기돼 있으니 알아두면 메뉴를 볼 때 편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핀초스 한 접시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근심 걱정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광장 앞 우루메아 강 건너에는 ‘주리올라’ 해변이 있다. 파도가 높아 서퍼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콘차 해변이 여행자들의 쉼터라면 이곳은 현지인들의 터전이다. 모래사장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이거나, 간혹 상의를 벗은 여성들의 토플리스 차림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열심히 다니다 보니 어느 새 날이 저물었다. 우르구이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모타 성’의 그리스도 상과 석양이 어우러지자 시야는 금세 인상파 화가가 그린 듯한 강렬함으로 뒤덮인다. 우르메아 강변을 따라 시내로 돌아오는 길이 잠깐 사이에 어두워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야경과 물 위에 떠다니는 별, 불어오는 강바람이 밤의 운치를 더한다.

여행 정보

기차로 산 세바스티안까지는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약 5시간,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약 6시간 걸린다. 몬테 이겔도의 케이블카는 7~9월에, 산타 클라라 섬을 오가는 유리 바닥 보트는 6~9월에 운영된다. sansebastianturismo.com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