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외환위기를 못 벗어난 外投法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달 국내 기관투자가 자금을 모아 영국 인프라펀드에 투자할 때의 일이다. 영국 당국은 ‘미래에셋펀드에 투자한 기관투자가 명단과 담당자 신분증 사본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내세운 명분은 ‘KYC(know your customer·고객 알기제도)’ 원칙. 향후 손실이 나더라도 이를 감당할 만한 투자자인지 ‘단순히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영국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돈의 출처를 알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인 KKR이 한국토지신탁을 인수하려는 과정에서 대타를 내세웠다는 기사(본지 8월21일자 A4면)가 게재된 뒤 한 독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편법을 방치하면 방위산업체까자 외국인 수중에 넘어가는 만큼 이젠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외국인 투자 규정이 담겨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외국환거래법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달러 유치’와 ‘외국환의 원활한 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금융, 신문·방송, 원자력발전, 방위산업 등 몇 개 업종을 제외하고 외국인들이 국내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데엔 제한이 없다. 자금 출처를 밝히는 것도 국세청 세무 조사를 제외하곤 불가능하다. 상장사 투자에 적용되는 ‘5% 공시 룰(지분 5% 이상 취득 시 공시하도록 한 제도)’에도 표면상 투자자만 드러날 뿐이다.

미국만해도 외국인이 경영권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는 거래를 할 경우 외국인투자위원회에 투자자 자금 출처를 포함한 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2012년엔 중국 사니그룹이 소유한 롤스코퍼레이션이 소규모 농장을 인수하려고 했을 때 미국 정부는 해군 무기 시스템 훈련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투자를 불허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자유롭게 투자하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돈이 어떤 자금인지 알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 미국이나 영국만해도 외국인 자금의 ‘흑백’을 가리고 투자가 적법하게 집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관련 규정을 손볼 때가 된 것 같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