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선행학습
책 냄새를 맡고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독서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섰다. 학창시절 누구나 ‘예·복습을 잘해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예습과 복습이 좋은 공부 습관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가을에 또 공부에 대한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것 같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이 9월12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대한 실질적 규제방안 결여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예습과 선행학습의 기준이 모호해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예습과 선행학습은 모두 ‘배울 것을 미리 익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선행학습금지법에도 선행학습을 ‘학교교육 과정에 앞서서 하는 학습을 말한다’라고만 정의하고 있어 예습과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전자는 복습과 더불어 학생이 해야 할 중요한 미덕으로 권장되고, 후자는 금지 대상이 됐다.

두 단어의 차이는 동기와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예습은 수업을 잘 듣고 깊이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진단하고 준비하는 과정이다. 반면 선행학습은 경쟁에서 이겨 좋은 성적 등 결과를 얻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자기주도 학습이 어렵고 사교육 등 남의 도움을 찾게 된다. 미리 다 배워버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들을 이유를 퇴색시킨다.

이렇게 보면 제법 구분이 되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존재한다. 개개인의 목적과 동기를 판단할 근거나, 교육적 효과가 있는 예습인지, 그렇지 않은 선행학습인지를 구분하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과정 내에서 변별력을 가리기 위한 심화문제를 선행문제라고 규정, 행정·재정적 규제를 가하면 학교 교육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예습과 학습, 복습이 삼위일체가 될 때 건강한 교육이 가능하고 학력도 높아지게 된다. 병을 고치려고 과하게 약을 먹으면 유산균 같은 몸 안의 좋은 균도 사라진다. 학기나 학년을 뛰어넘는 선행학습은 규제해야겠지만, 선행학습금지법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미리 공부하는 예습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의 예습장마저 빼앗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