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강동준 "까다로운 밀라노…포기 찰나에 '흥미롭다' 연락 왔죠"
국내 남성복 디자이너로 올 1월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패션위크를 밟은 데 이어 6월 같은 곳에서 두 번째 패션쇼를 연 강동준 디그낙(D.GNAK) 대표(사진).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난 강 대표는 ‘예술 하는 디자이너’라는 느낌보다는 ‘예절 바른 사업가’ 느낌이 강했다. 그는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전위적 의상(파퓰러 아방가르드)을 만들자는 게 철학”이라며 “세계 모든 남성이 디그낙 옷을 한 벌쯤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팔지 않는 디그낙은 짙은색을 기본으로 하는 남성 패션 브랜드다. 다양한 디테일로 짜인 실험적이면서도 중후한 정장이 주력이다. 무명 모델에서 최근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우빈 씨가 모델 시절 즐겨 입었고, 배우 이정진 씨도 이 브랜드 마니아다. 2006년 강 대표가 청담동 반지하방에서 만들었고 2008년 서울패션위크에서 정식 데뷔했다.

어릴 때부터 남성복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강 대표는 한때 이를 접을 뻔했다. 부친인 강만희 동서기공 회장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동국대 독문학과에 진학했다 1년 만에 몰래 그만두고 한성대 의생활학부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절대권력이시거든요. 들통 났을 때 ‘대체 네 인생에서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다그치시는데 ‘부모님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고 큰 문제’라고 애원하니까 그제야 인정하시더라고요.”

이후 ‘기왕 할 거 제대로 하라’는 아버지 권유에 따라 미국 뉴욕 파슨스스쿨로 유학을 갔다. 그는 “거친 환경에서 사자처럼 살아보라며 할렘가에 거처를 마련해 주셨다”고 웃었다. 당시는 뉴욕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던 시기였다.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를 듣고 권총을 들이대는 흑인과의 실랑이 등 온갖 경험을 했다.

5년간 패션디자인 공부를 한 강 대표는 한인 미국 시민권자와 동업 형태로 의상실을 차리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는 “뭔가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 경영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고 했다. 오랜 유학으로 지친 마음도 다스릴 겸 귀국,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그는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패션쇼에 이렇게 일찍 설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여러 전시장을 돌며 바이어를 상대로 발품을 팔아 물건을 넘기면 그걸로 족했다. 그러나 중국 윈저우에서 온 의류 도매상 중 한 명이 그의 옷을 보고 “서울패션위크에 먼저 서라”고 강력하게 조언한 게 전환점이 됐다. 그는 “신진 디자이너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디그낙은 현재 미 뉴욕과 함께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홍콩 태국 나이지리아 등 세계 75개국에서 편집숍 형태로 판매 중이다. 광고 한 번 한 적 없지만 입소문을 탄 결과다. 밀라노패션위크에 서기까지 서울시의 글로벌 패션브랜드 육성사업도 많은 도움을 줬다.

밀라노에 서는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포기하려는 찰나, 패션위크 주최 측에서 ‘옷이 꽤 흥미롭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는 “아르마니 구찌 페라가모 등 올드한 거장들의 스타일을 넘어 젊은 쪽에 시선이 간 것 같다”며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