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바이러스 - "현실성 없어…창의력 부족해"…입만 열면 'No'
무기력 아이콘 - 과장인데 허드렛일 시켜도…노력 안하고 '시큰둥'
툭하면 아프다는 밉상 ‘잉여족’
금융 공기업에 다니는 신입사원 정모씨(27)는 직속 선배 때문에 업무가 이중삼중으로 몰리기 일쑤다. 그 선배는 이른바 ‘병자 코스프레족’이다. 매달 한 번 이상은 꼭 몸이 아프다고 병가를 낸다. 위경련, 어지럼증,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 등 이유도 다양하다. 본인뿐이 아니다. 남편에 아이까지 온 가족을 빌려 쓸 수 있는 모든 병가를 다 챙기고 있다.
정씨는 “처음에는 정말 사정이 있겠거니 했는데 수도 없이 반복되니 이제는 핑계로 여겨져요. 그런 선배만 아니면 업무가 절반은 줄었을 것 같아요”라고 하소연했다.
예술단체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김 대리(32)는 지난해 기다리던 후배를 받았다. 5년 동안의 막내 신세를 벗어나게 돼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신입사원이니 일하는 게 서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일은 잘 몰라서요” “제 전공이 아니라서요”라며 미꾸라지처럼 일을 피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화초에 물 주기나 상사에게 아부하기, 다른 부서 여직원에게 찝쩍거리기는 열심이다. “저런 후배는 차라리 없는 게 속편해요”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직장생활이 취미? 남몰라 ‘잉여족’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인 김모씨(25)는 자신의 직속 상사인 오 팀장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출근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춰 나온 오 팀장의 하루는 인터넷 쇼핑으로 시작한다. O마켓, OOO몰을 포함해 티O, O팡 등 소셜커머스 사이트까지 순례한 그는 동료들에게 당당하게 질문을 던진다. “이 시계보다 이 시계가 낫지?”
오전 11시가 되면 오 팀장은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학교 앞은 질렸으니 오늘은 멀리 맛집에 가보자”며 파워 블로거들의 맛집 후기를 훑는다. 식사를 마치면 낮잠은 필수다. 안락한 의자에서 한 시간가량 숙면을 취한 뒤 “이제 일좀 해볼까”라며 책상 정리를 하면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팀원들이 야근을 하든 말든 오후 5시30분이면 쏜살같이 사라진다. “저런 사람이 월급 도둑 아닙니까.” 김씨의 절규다.
“NO”부터 외치는 의욕저하 유도형 ‘잉여족’
식품업체에서 일하는 한 대리(33)는 요즘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난봄 인사 때 옆 부서에서 이동해 온 차장 때문이다. 전임 차장은 ‘파이터형’이었다. “되든 안 되든 아이디어를 내란 말이야”라고 부르짖는 스타일. 일 중독형으로 주위를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일에서 성과가 나니 뿌듯함은 있었다.
새로 온 차장은 정반대 스타일이다.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안 되는 이유부터 댄다. “이건 현실 가능성이 없어” “독창성이 부족해” 등등. 윗선에 보고되기도 전에 차장선에서 사장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이 하나 둘씩 줄었다.
“항상 들볶는 전임 차장 때문에 동료들끼리 불평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나았어요. 이제는 ‘어차피 퇴짜 맞을 텐데 뭐하러 고민하느냐’는 식으로 아예 의욕도 없고 소극적이 되더라니까요.”
일도 성격도 안 되는 구제불능 ‘잉여족’
대기업 계열 자동차업체에 근무하는 이 부장은 뒤늦게 자신이 ‘잉여 부장’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의 별명은 ‘닦새’. 주말까지 쉴 새 없이 부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닦달해서 붙은 별명이다. 이 부장은 별명에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이 부장은 최근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상사의 업무 능력이나 통솔력 등을 평가하는 평가에서 본부 내 꼴찌를 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이 내리는 지시는 엉뚱한 것이 많았다. 업무 파악이 제대로 안 돼서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부원들은 자연스럽게 이 부장의 지시를 무시했다. 지시가 안 통하니 이 부장은 주말에도 전화를 붙들고 부원들을 들볶는 닦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직해임자끼리 모아 놓은 부서에서 그는 뒤늦게 반성하고 있다.
김은정/안정락/황정수/강현우/김대훈/김인선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