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간의 맛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한 아파트에 산 지 15년이 됐다. 그러다 보니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놀랄 때가 많다. 다 큰 처자가 인사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꼬맹이 때 얼굴이 보인다. 내가 처음 입주할 때 내 나이쯤이던 남자들은 어느덧 어깨가 굽어지고 피부의 탄력성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아파트 주변 여기저기를 보면서 시간이 변화시킨 세상의 풍경을 음미하게 된다.

집을 2, 3년에 한 번씩 옮겨 다녔으면 돈도 벌고, 한 공간이 아니라 많은 공간을 마주하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세상은 공간의 맛을 보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시간의 맛을 보여준다는 위안을 하곤 한다. 아마 자주 옮겨 다녔으면 시간의 흐름이 주는 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보면 옛날 건물과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13세기에 태어난 이탈리아 인문학자이며 신곡(神曲)을 쓴 단테가 700여년이 지난 지금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서울은 불과 50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이 집을 못 찾는다고 하니 차이가 크다. 단테의 생가에는 700여년에 걸친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을 것이다. 그 건물 하나에만도 천일야화(千一夜話)를 써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본다. 늙고, 산화되며, 약해지는 것을 떠올린다. ‘늙는 길을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여기저기 초원이라는 공간을 옮겨 다녀야 하는 유목민족에게 시간의 맛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유목민의 후예라 그 기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시간의 맛을 찾고 있다. 지인들을 만나 보면 노후에 서울의 삼청동 같은 곳에 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오래된 옛길과 건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비단 해외관광객뿐만 아니라 내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스토리, 즉 시간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피렌체의 한 건물이나 삼청동 길과 같다. 이야기가 쌓인 기간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을지라도 시간이 만들어 낸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오래된 건물과 거리에서 시간을 맛보듯이 나를 그렇게 한번 쳐다보자. 나를 인식의 대상으로 놓고 한번 지긋이 바라보자. 노후도 시간이 빚어낸 결과다. 나를 감상하는 것도 노후를 보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김경록 <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grkim@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