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법인세 올린다고? SK하이닉스를 보라
여당 대표의 한마디에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에 회의가 든다”고 할 정도니 증세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타깃은 법인세다.

하긴 정부라고 요즘처럼 세금이 안 걷혀서는 용빼는 재주가 있을 리 없다. 상반기 국세 수입이 목표의 45.5%다. 사상 최저치다. 복지포퓰리즘이 아니더라도 쓸 곳은 많은 데 걷히지는 않는다. 아무리 세무조사 강도를 높이고 대상을 확대해도 추징액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법인세율 인상인 모양이다. 기업 내부유보에 세금을 매기기로 하고 법인세율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일자 기업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법인세를 올린다고 세금이 더 걷히는 건 아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박근혜 정부 조세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내세웠던 주장이다. 금융사 수수료, 병원 진료비 등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소득에 면세 감면을 축소해 세원을 확대하는 것이 옳지, 법인세 부담은 오히려 줄여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정치권은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를 내려줬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줄였다며 세율 인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웃기는 소리다. 돈이 된다고 판단되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것이 기업이다. 사업이 어렵겠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내부유보가 쌓여도 투자를 않는 것 또한 기업의 생리다.

따져보라.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를 내려줬다지만 인하폭은 쥐꼬리였고, 기업프렌들리 정책은 캐치프레이즈에 그쳤을 뿐이다. 소위 747 공약은 광우병 촛불에 타버렸고 친서민정책과 공정사회라는 포퓰리즘적 이슈가 지배한 5년 아닌가. 골목상권 규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와 같은 경제민주화 소동은 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여전히 경기 회생을 훼방하고 있고 줄이겠다던 시장 규제와 경제민주화 규제는 더 늘어났다. 노사 문제는 또 어떤가.

이런데 누가 선뜻 국내 투자를 결정하겠는가. 기업들이 해외로 뛰쳐나가는 이유다. 정부가 오죽 답답하면 해외투자 과세라는 채찍을 들고 나섰다. 기업의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일만이 법인세 총세수를 늘리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SK하이닉스를 보라. 최태원 SK 회장이 글로벌화를 겨냥해 2012년 인수한 뒤 성장축의 핵심에 둔 회사다. 그만큼 그룹 차원의 총력 투자가 이뤄졌다. 사실 채권단 손에 있을 때도 투자는 했다지만 최소한의 투자였을 뿐이다. 그런 회사가 SK의 우산 속으로 들어온 뒤 매년 4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됐다. 지난해에는 연구개발비만 1조원이 넘었을 정도다. 마침 반도체 호황 사이클이 겹치면서 지난해 거둔 실적이 매출 14조원에 영업이익 3조3800억원이다. ‘글로벌 치킨게임’을 넘어선 것도 다행인데 세계 5위의 반도체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 회사가 올해 납부할 법인세가 무려 7000억원이다. 정부의 올해 법인세수 목표 47조원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9년간 한 푼의 법인세도 내지 못하던 회사가 정부의 구멍 난 세수를 메워주니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기업의 투자가 세수 확대로 이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SK하이닉스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마침 미국에서는 기업의 애국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높은 법인세율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기 위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어서다. 우리가 잘 아는 버거킹 같은 곳이 그런 회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회사를 비애국적 기업으로 규정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그레고리 맨큐 교수 같은 사람들은 이참에 세제를 뜯어고쳐 아예 법인세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리라고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올해도 기업 실적이 영 좋지 않다. 내년 법인세수 역시 엉망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과 정부는 사정이 갈수록 나빠진다며 법인세율 인상 카드나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사람들, 투자 환경을 개선해 SK하이닉스 같은 회사를 10개, 20개 더 만들어내 보자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