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소유·민영화가 이끈 폴란드의 번영…'시장경제 승리'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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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48) 동유럽의 부상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시장경제 도입
혹독한 '체질 개선' 폴란드
한때 물가 폭등·생산량 급감
10년도 안돼 성장궤도 진입
7%대 경제 성장률 기록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시장경제 도입
혹독한 '체질 개선' 폴란드
한때 물가 폭등·생산량 급감
10년도 안돼 성장궤도 진입
7%대 경제 성장률 기록
“언제부터요?”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의 동독 특파원 리카르도 에르만의 이 질문 한 마디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한 20세기 후반 세계사 최대의 정치적 변혁을 촉발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1989년 동독 주민들의 개혁 요구가 거세게 일자 동독 공산당(SED)은 ‘체제 내 개혁’의 일환으로 여행 자유화에 관한 법안을 공포했다. 그런데 이 법에 출국비자 발급기관을 신설한다는 내용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 동독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동독 내각은 출국비자 발급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을 포고령의 형태로 설명하기로 했다. 그것이 1989년 11월9일 오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독 공산당은 베를린 장벽을 개방할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7시. 동독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선전담당 비서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런데 포고령에 대해 설명해야 할 샤보브스키는 이날 오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세세한 사항은 잘 모르고 있었다. 포고령의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는 여행 동기나 친인척 관계 같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외국여행을 신청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출국비자가 발급될 것입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언제부터냐”, “서독도 포함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던 샤보브스키는 당황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즉각 시행된다”고 대답했다. 에르만 기자는 본사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속보를 송고했다. 뉴스로 이 소식을 접한 동베를린 주민들은 서베를린 쪽으로, 서베를린 주민들은 동베를린 쪽으로 몰려들었다. 동독 주민들의 통행요구 압박에 시달리던 동독 경비병들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결국 밤 10시쯤 한 장교의 결단으로 서베를린으로 가는 출입문이 열렸다. 동서독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포옹했고, 이로써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유럽 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촉발시켰다. 동독에는 서독과의 통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경제체제가 이식됐고, 폴란드는 1989년 자유 총선을 거쳐 1990년에는 레흐 바웬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헝가리는 1990년 3월 자유총선을 실시했고, 체코는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프라하의 봄’을 21년 만에 되찾았다.
체제전환의 핵심은 계획경제 철폐 및 이를 대신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 원칙의 확립과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묶였던 상품 가격을 자유화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다. 무역의 국가독점 구조를 철폐해 무역 자유화가 실시됐다. 해외투자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국유 사업장은 민영화됐다. 이 민영화는 공산주의 시대를 청산하는 ‘빅뱅’으로서 각국의 10년 뒤 미래를 결정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시장원리에 따라 민영화를 단행했지만,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에서는 민영화가 권력자들 간 나눠먹기식으로 이뤄졌다. 이것이 동유럽 국가들을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가른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또 민영화 작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금융 및 자본시장의 인프라 도입도 추진됐다.
폴란드는 1989년 640%에 달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통화 공급을 억제하고, 중앙은행법에 중앙은행의 목표를 화폐가치 안정에 둔다고 규정했다. 수정된 은행법에 따라 외국인에게도 은행 설립이 허용됐다. 상업은행은 이자율 책정 등 은행 경영의 자율성을 획득했다. 심각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 폐지 등 세출 축소에 주력했다. 노동시장에서는 불필요한 노동력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며, 실업수당의 수혜조건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꾀하고 근로의욕을 고취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가격이 자유화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생산은 곤두박질쳤다. 사실 이것은 지난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의 잘못된 정책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이데올로기 논쟁에 휩싸이기도 하고, 좌우익 정권이 교체되는 ‘통과의례’를 거치기도 했다. 사회주의 정권은 무분별하게 통화를 늘렸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격통제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억지로 눌러 왔다. 이것이 가격 자유화를 통해 드러나고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물가 폭등이었다. 또 비효율적인 생산방식과 낮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생산기반은 국제경쟁에 직면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분업체계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과 경쟁력 제고가 이뤄져야만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성장과 삶의 질 향상으로 나타났다. 폴란드는 전환이 시작되던 1990년 -11.6%였던 국내총생산(GDP)이 1992년 이후 양(陽)의 성장률로 돌아서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인당 GDP 역시 1994년 5380달러, 1996년 7000달러로 증가했다. 막 기지개를 켠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기대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도 다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체코정치경제연구소 리살 소장의 말이다. “공산당의 계획과 명령에 따라 인생이 정해졌던 과거와는 달리 내가 원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 점이 가장 행운이었다.”
래퍼곡선과 경기부양 법인세 폐지 에스토니아…투자 활기 세수 두 배로
인도에서는 코코넛을 이용해 원숭이를 잡는다. 코코넛에 원숭이의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속을 긁어낸 뒤 그 속에 쌀을 넣고 끈을 연결해 나무에 묶어둔다. 원숭이는 쌀을 집어 먹기 위해 코코넛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쌀을 욕심껏 움켜잡는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원숭이는 달아나려 애를 쓰지만 쌀을 잔뜩 쥔 손을 놓지 않아 결국 사로잡히고 만다.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욕심에 눈이 먼 행동을 하는 것을 빗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금 관련 정책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복지재원 마련 등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세율을 올린다. 하지만 이는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고, 지하경제와 탈세를 유발해 조세수입은 오히려 감소한다. 역으로 세율이 낮아지면 노동의욕과 투자의욕이 제고되고 생산 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조세수입은 증대된다. 세율과 조세수입과의 이런 관계를 주장한 사람은 아서 B 래퍼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였으며, 이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래퍼곡선’이다. 이 이론은 이런저런 이유로 레이건 정부 당시 한 차례 큰 관심을 받은 이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세율 인하가 세수를 증대시키는 일이 실제로 나타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동유럽의 에스토니아가 2000년 법인세제를 개혁해 개인배당을 제외한 법인이윤에 대한 법인세가 폐지됐지만 세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물론 개혁 첫해인 2000년 법인세 수입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다음해인 2001년 저점을 통과한 이후로는 빠른 속도로 회복돼 개혁 3년 만인 2003년 개혁 이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됐다. 2007년의 법인세수는 개혁 이전 수준의 두 배가 넘는다. 래퍼곡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금 감면이 투자와 생산을 확대시켜 조세수입이 늘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복지 확대 등 정부 재원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법인세율 인상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세계 각국의 법인세율 인하 경쟁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코코넛에 손을 넣은 원숭이가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얻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조세수입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의 동독 특파원 리카르도 에르만의 이 질문 한 마디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한 20세기 후반 세계사 최대의 정치적 변혁을 촉발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1989년 동독 주민들의 개혁 요구가 거세게 일자 동독 공산당(SED)은 ‘체제 내 개혁’의 일환으로 여행 자유화에 관한 법안을 공포했다. 그런데 이 법에 출국비자 발급기관을 신설한다는 내용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 동독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동독 내각은 출국비자 발급에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을 포고령의 형태로 설명하기로 했다. 그것이 1989년 11월9일 오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독 공산당은 베를린 장벽을 개방할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7시. 동독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선전담당 비서 귄터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런데 포고령에 대해 설명해야 할 샤보브스키는 이날 오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세세한 사항은 잘 모르고 있었다. 포고령의 내용은 이렇다. “앞으로는 여행 동기나 친인척 관계 같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외국여행을 신청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출국비자가 발급될 것입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언제부터냐”, “서독도 포함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던 샤보브스키는 당황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즉각 시행된다”고 대답했다. 에르만 기자는 본사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속보를 송고했다. 뉴스로 이 소식을 접한 동베를린 주민들은 서베를린 쪽으로, 서베를린 주민들은 동베를린 쪽으로 몰려들었다. 동독 주민들의 통행요구 압박에 시달리던 동독 경비병들은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결국 밤 10시쯤 한 장교의 결단으로 서베를린으로 가는 출입문이 열렸다. 동서독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포옹했고, 이로써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유럽 국가들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촉발시켰다. 동독에는 서독과의 통일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경제체제가 이식됐고, 폴란드는 1989년 자유 총선을 거쳐 1990년에는 레흐 바웬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헝가리는 1990년 3월 자유총선을 실시했고, 체코는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프라하의 봄’을 21년 만에 되찾았다.
체제전환의 핵심은 계획경제 철폐 및 이를 대신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 원칙의 확립과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묶였던 상품 가격을 자유화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다. 무역의 국가독점 구조를 철폐해 무역 자유화가 실시됐다. 해외투자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국유 사업장은 민영화됐다. 이 민영화는 공산주의 시대를 청산하는 ‘빅뱅’으로서 각국의 10년 뒤 미래를 결정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시장원리에 따라 민영화를 단행했지만,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에서는 민영화가 권력자들 간 나눠먹기식으로 이뤄졌다. 이것이 동유럽 국가들을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가른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또 민영화 작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금융 및 자본시장의 인프라 도입도 추진됐다.
폴란드는 1989년 640%에 달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통화 공급을 억제하고, 중앙은행법에 중앙은행의 목표를 화폐가치 안정에 둔다고 규정했다. 수정된 은행법에 따라 외국인에게도 은행 설립이 허용됐다. 상업은행은 이자율 책정 등 은행 경영의 자율성을 획득했다. 심각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 폐지 등 세출 축소에 주력했다. 노동시장에서는 불필요한 노동력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 인상을 억제하며, 실업수당의 수혜조건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꾀하고 근로의욕을 고취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가격이 자유화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생산은 곤두박질쳤다. 사실 이것은 지난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의 잘못된 정책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이데올로기 논쟁에 휩싸이기도 하고, 좌우익 정권이 교체되는 ‘통과의례’를 거치기도 했다. 사회주의 정권은 무분별하게 통화를 늘렸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격통제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억지로 눌러 왔다. 이것이 가격 자유화를 통해 드러나고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물가 폭등이었다. 또 비효율적인 생산방식과 낮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생산기반은 국제경쟁에 직면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분업체계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과 경쟁력 제고가 이뤄져야만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성장과 삶의 질 향상으로 나타났다. 폴란드는 전환이 시작되던 1990년 -11.6%였던 국내총생산(GDP)이 1992년 이후 양(陽)의 성장률로 돌아서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인당 GDP 역시 1994년 5380달러, 1996년 7000달러로 증가했다. 막 기지개를 켠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기대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도 다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체코정치경제연구소 리살 소장의 말이다. “공산당의 계획과 명령에 따라 인생이 정해졌던 과거와는 달리 내가 원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 점이 가장 행운이었다.”
래퍼곡선과 경기부양 법인세 폐지 에스토니아…투자 활기 세수 두 배로
인도에서는 코코넛을 이용해 원숭이를 잡는다. 코코넛에 원숭이의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속을 긁어낸 뒤 그 속에 쌀을 넣고 끈을 연결해 나무에 묶어둔다. 원숭이는 쌀을 집어 먹기 위해 코코넛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쌀을 욕심껏 움켜잡는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원숭이는 달아나려 애를 쓰지만 쌀을 잔뜩 쥔 손을 놓지 않아 결국 사로잡히고 만다.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욕심에 눈이 먼 행동을 하는 것을 빗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금 관련 정책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복지재원 마련 등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부분 세율을 올린다. 하지만 이는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고, 지하경제와 탈세를 유발해 조세수입은 오히려 감소한다. 역으로 세율이 낮아지면 노동의욕과 투자의욕이 제고되고 생산 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조세수입은 증대된다. 세율과 조세수입과의 이런 관계를 주장한 사람은 아서 B 래퍼 미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였으며, 이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래퍼곡선’이다. 이 이론은 이런저런 이유로 레이건 정부 당시 한 차례 큰 관심을 받은 이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세율 인하가 세수를 증대시키는 일이 실제로 나타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동유럽의 에스토니아가 2000년 법인세제를 개혁해 개인배당을 제외한 법인이윤에 대한 법인세가 폐지됐지만 세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물론 개혁 첫해인 2000년 법인세 수입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다음해인 2001년 저점을 통과한 이후로는 빠른 속도로 회복돼 개혁 3년 만인 2003년 개혁 이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됐다. 2007년의 법인세수는 개혁 이전 수준의 두 배가 넘는다. 래퍼곡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금 감면이 투자와 생산을 확대시켜 조세수입이 늘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복지 확대 등 정부 재원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법인세율 인상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세계 각국의 법인세율 인하 경쟁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코코넛에 손을 넣은 원숭이가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모습과 같아 보인다.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얻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조세수입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