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홍경택 씨가 중국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펜3’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펜3’는 화려한 색채의 필기구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이다. 김인선 기자
서양화가 홍경택 씨가 중국 항저우 삼상당대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펜3’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펜3’는 화려한 색채의 필기구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이다. 김인선 기자
지난 29일 오후 5시께 중국 저장성 항저우 시내 삼상당대미술관. 저명한 작가들이 많이 거쳐가 중국 미술계에 영향력이 큰 이곳이 중국 미술계 인사들과 취재진, 일반 관람객 100여명으로 북적댔다. 학고재갤러리와 삼상당대미술관이 9월28일까지 여는 한국 현대미술 기획전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전시에는 서양화, 동양화, 사진,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출품됐다. 참여 작가는 백남준(1932~2006)과 이우환(78) 김아타(58) 유근택(49) 홍경택(46) 이세현(47) 이용백(48) 오윤석(42) 권순관(41) 김기라(40) 박지혜(33) 장종완(31) 등 12명의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 돌과 철판을 소재로 한 이우환의 ‘관계항’, 1995년 프랑스 리옹비엔날레에 전시됐던 백남준의 초기 텔레비전 설치 작품 5점, 톨스토이를 형상화한 로봇, 이용백의 ‘브로큰 미러’ 등 30여점이 전시됐다.

백남준부터 장종완까지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두루 선보이는 전시를 중국에서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관장은 “현재 항저우 저장미술관에서는 5년마다 열리는 ‘전국미전’이, 중국미술학원 미술관에서는 영국 작가 로먼 시그너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어 중국 전역의 작가들이 항저우로 몰리고 있다”며 “매우 적절한 시기에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항저우는 전통적으로 중국 미술계의 본류로 꼽히는 도시다. 남송의 수도였던 항저우는 베이징 중앙미술학원과 함께 중국 양대 미술학교로 꼽히는 중국미술학원이 있는 곳이다. 중국 아방가르드 1세대 작가 황용핑,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차이궈창 등 중국 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이 여기서 배출됐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깨고 표현의 영역을 넓혀간 중국의 ‘85미술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천즈징 삼상당대미술관장은 “지금 중국 현대미술계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 중인데 이번에 전시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람객 천지아링은 “한국 작가들의 화풍이 매우 독특하다”며 “중국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의미가 명쾌하고 간단한 반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도록 깊이 있는 작품이 많은 것 같다”고 평했다. 쉬원원 상하이데일리닷컴 기자는 “전통에만 치우친 중국 작가들의 작품과 달리 전통과 현대성을 잘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이우환의 작품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최근 미술시장에서 중국 작가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한국 작가의 입지는 아직 좁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작가들이 중국 시장에서도 입지를 굳건하게 확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항저우=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