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제주와 발리
요즘 필자는 관광 분야에 관심이 많다. 지난 학기부터는 대학교에서 관련분야 강의도 맡고 있다. 지인들은 내가 전공이나 직업과 동떨어진 과목을 가르치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굳이 말하자면 두 가지다. 첫째,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관광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다녀온 국가를 대충 헤아려 보니 남극을 제외한 6개 대륙 70여 개국에 이르렀다. 둘째, 앞으로 관광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몇 안 되는 중요 산업이기 때문이다.

작년 통계를 보면 서울은 외국인 관광객 내방 기준 세계 11위로 도쿄, 상하이보다 많다. 양적으로는 실로 놀랍지만 질적으로도 그런지 자문해 본다. 외국인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맛보기 위해 자주 찾는 인사동 거리를 보면 한마디로 실망이 크다. 어쩌면 그렇게도 관광객들이 보고 체험하고 느낄 우리의 것들이 없는지 부끄러울 정도다. 선조들이 보셨다면 무척 슬퍼할 일이다. 과연 한 번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 할지 의문이다.

천혜 관광 조건을 갖춘 제주도와 종종 비교되는 인도네시아 발리를 이번 여름휴가 때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주가 발리를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잘하면’이 붙는다. 먼저 자연을 보면 두 곳 모두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잘 관리된 제주의 한라산, 오름, 둘레길 더 나아가 자연에서 느끼는 아기자기한 정취까지 감안하면 제주에 한 표를 더 던지고 싶다. 깨끗한 주변환경, 잘 조성된 도로 등 인프라도 제주가 낫다.

하지만 결정적인 측면에서 제주는 발리를 못 따라간다. 자연 빼놓고는 역사, 문화, 미학적 측면에서 제주다운 것이 부족하다. 제주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더 필요하다. 발리의 경우 섬 전역에 고층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고 건축양식이 모두 발리 전통양식이다. 집집마다 힌두 사원이 있고 거기서 매일 의식을 치른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 가무를 즐긴다. 관광 기념품도 정교한 수공품이 즐비하다.

관광의 추세가 단순한 자연 감상에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제주가 발리에 비해 점점 불리해지지 않겠는가. 제주 아니 한국 관광산업 전체가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체취를 느끼고 감동적 체험을 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 한강의 기적에 상응하는 ‘제주의 기적’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주우식 < 전주페이퍼 사장 w.chu@jeonjupap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