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1936년. 올림픽 마라톤 결승 테이프를 끊으며 손기정은 울었다. 경주 내내 걸리적거리던 불량품 운동화부터 벗어던졌다.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폐부를 찔렀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오는 시상대에서 한국 청년 손기정은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브라질 상파울루, 2014년. 벨기에와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 손흥민이 큰 소리로 울었다. 골도 넣고 경기마다 가장 열심히 뛰었던 막내가 폭풍 눈물을 쏟았다. 늘 맞붙던 독일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의 지난주 홈페이지 메인은 한국 청년 손흥민 차지였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두 게임 모두 골을 터뜨려 으뜸으로 올라선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성화대 옆에는 우승자 명패가 붙어 있다. 마라톤 우승자 표식은 ‘Son, Japan’이다. 손기정 선생 생전에 국적 정정을 위해 애썼지만 허사였다. 영어 성씨를 ‘Sohn’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도 거부됐다. 가장 흔한 보통명사 ‘Son’으로 표기한 것은 한국 성씨를 깎아내릴 일본의 속셈으로 짐작된다. 독일이 만든 홈페이지에는 손기정은 한국인이고 시상대에서 나라 잃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으며 한국식 이름은 ‘Ki-Jung Sohn’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 공식 기록은 아직도 ‘Son, Japan’이다. 손흥민은 독일로 진출하면서 손기정과 같은 ‘Son’을 성씨로 정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난 손기정은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전거를 마련하지 못해 2㎞ 떨어진 초등학교까지 매일 뛰어다니며 주력을 길렀다. 극심한 질시와 차별을 겪으면서도 베를린 올림픽 출전자격을 따냈다. ‘자신과의 싸움’으로 대변되는 마라톤은 우승자에게 엄청난 영광을 안겨줘야 완주를 끌어낼 수 있다. 시상대에서 가슴의 일장기가 한스러워 슬피 울었던 나라 잃은 청년의 우승은 그래서 더욱 빛났다.

손흥민의 부친은 프로축구 선수 출신이다.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축구 홈스쿨링에 나섰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지도 방식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어린 축구선수들 사이에는 무섭지만 부러운 신화 같은 아버지다.

할 일을 제대로 찾지 못한 한국 청년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절반 넘는 청년이 놀고 있고, 자살률도 세계 최고다. 결혼도 늦어지고 출산율도 바닥이다. 나라가 통째로 없어질지 모른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가정의 과잉보호와 학교의 과소교육이 문제다. 강의평가가 공개되면서 대학마다 학생 눈치 살피기가 극성이다. 과제물은 줄어들고 성적 뻥튀기로 엉망이다. 한국 대학의 허술한 성적평가는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다. 청년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과제물을 부과하고 학업성과가 미흡하면 어김없이 낙제시켜야 한다. ‘최악’이라는 강의평가를 받을 각오로 해야 한다.

일부 교수와 문필가들이 폭넓게 장악한 소셜네트워크도 문제다. 무차별적 비판을 쏟아내 청년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진정으로 청년을 아낀다면 미래를 개척할 피땀도 강조해야 한다. 새벽부터 뛰어다니며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가의 공헌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한국 기업은 한국 청년에게는 배경이고 희망이다. 레버쿠젠 메인 스폰서인 LG의 로고를 가슴에 달고 운동장을 누비는 손흥민은 얼마나 뿌듯할까.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손기정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삼성 휴대폰, 현대 승용차, LG TV 등 한국 제품은 별처럼 빛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스토리를 양산하는 세력에 대해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지를 되묻고 싶다.

기업이 위기 대처 능력을 높이면서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노동관계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청년 고용에 따른 임금 일부를 세금 감면으로 지원하는 등 획기적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청년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기업은 투자 확대를 통해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려 국가의 활력을 되살려야 할 때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